'비운의 검투사' 황영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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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검투사' 황영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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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출고 2009년 09월 23일 11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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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인 경영으로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금융계의 '검투사'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이 금융감독 당국의 집요한 전방위 압박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사임하는 비운의 경영인 신세가 됐다.

'은행권 부실의 책임자'라는 프레임(틀)의 희생양이 된 황 회장이 어떤 방식으로 명예를 회복해 나갈지 주목된다.
  
◇금융계 스타에서 비운의 CEO로
황 회장은 1975년 삼성물산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삼성투신운용 사장과 삼성증권 사장을 맡는 등 이른바 `삼성맨'의 길을 걸어왔다.

1989년 삼성에서 인수한 국제증권을 지금의 삼성증권으로 성공적으로 탈바꿈시킨 이후 민간 금융계가 낳은 최고의 스타 CEO(최고경영자)로 떠올랐고 2004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으로 발탁됐다.

당시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간 합병이 마무리되고 조흥은행을 인수한 신한금융이 LG카드마저 인수하면서 우리금융이 은행권 3강 구도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하자 공격적인 경영을 택했다.

그는 은행권 영업 대전(大戰)을 이끌며 당시 총자산 기준으로 금융업계 3위였던 우리금융을 국내 최대 금융그룹으로 도약시켰고 시가총액도 2.7배나 늘리는 등 성과를 올렸다.

이 같은 성과에도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의 잦은 마찰 등으로 연임에 실패한 황 회장은 15개월 뒤 KB금융 초대 회장으로 선임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러나 KB금융 회장으로 취임하기 보름 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우리금융 회장 시절 투자했던 파생금융상품인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가 휴지 조각이 되면서 1조6천억 원의 손실로 이어졌다.

예기치 못한 세계적 금융위기로 공격적 투자 결정이 막대한 부실로 이어지게 됐고 거침없는 행보로 정체된 우리 금융산업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던 황회장은 은행 부실의 책임자라는 오명을 쓰는 신세가 된 것이다.
  
◇"틀에 갇히면…"
황 회장은 최근 강정원 국민은행 행장 부친상 빈소에서 "(론스타처럼) 프레임에 갇히면 다른 말이 먹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 행장 부친이 외환은행 출신인 점이 화제가 되면서 언급한 말이지만 참석자들은 황 회장아 은행권 부실의 책임자라는 프레임에 갇힌 자신의 처지에 대한 심경을 간접적으로 피력한 것으로 해석했다.

금융업계에서는 황 회장의 처지를 2003년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책임 문제로 각종 조사에 시달린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에 비유하고 있다.
황 회장은 또 "여당 대표가 MB악법이 아니라 MB약법이라고 했지만, 그 순간 MB악법이란 프레임에 걸려들었다"며 이를 `낙인 찍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또 미국 버클리대 조지 레이코프 교수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란 책을 언급하면서 "공화당이 상속세(estate tax)를 사망세(death tax)로 바꿔 부르자 유권자들이 상속세에 부정적인 입장이 됐다"고도 했다.

황 회장은 "한 번 덫에 걸리면 흔들수록 덫은 더 세진다"며 우리금융 부실의 책임에 대해 해명을 할수록 금융당국 등으로부터의 압박이 세지는 데 대한 부담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황 회장은 여전히 파생상품 투자와 관련해 법규를 위반한 적이 없고 금융위기로 발생한 투자 손실은 제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9일 "입장을 소명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주장이 수용되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한 데 이어 이날도 "수차례의 소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의 주장이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예기치 못한 세계적 금융위기의 여파로 세계 여론이 금융 자유화에서 금융 규제 강화로 돌아선 가운데 금융감독 당국이 강력히 제기한 `책임론'에 밀려 부실의 원인 제공자라는 프레임을 빠져나오지 못한 채 1년 만에 낙마한 검투사 황 회장이 어떤 식으로 오명을 벗을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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