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슈머타임스=김동현 기자 | "서울 재건축 수주는 언감생심입니다."
최근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온 말이다. 건설업계의 침체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가운데, 강남을 비롯한 핵심입지 정비사업장 시공사 선정 유찰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단번에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과거에는 중견건설사들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대에서 정비사업에 입찰하고, 수주하는 사례가 많았다. 실제 서울시내 중심입지 내에 구축아파드들을 살펴보면 중견건설사들이 시공한 단지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옛말'이다.
최근 한남4구역을 비롯해 서울시내 대형 정비사업지의 수주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견건설사들의 수주활동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요즘 분위기 상으로는 중견건설사가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설명회에만 등장해도 이른바 '뉴스'가 될 정도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중견건설사들이 서울에 발을 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대형사들을 중심으로 정비사업 수주전이 이뤄지는 양상이 짙어지고 있어서다. 게다가 수요자들의 대형건설사 브랜드 선호현상이 심화되는 영향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서울 등 핵심입지 분양시장은 사실상 대형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재편되기에 이르렀다.
실제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분양물량 2만8627가구 중 10대 건설사 공급 물량은 2만3711가구로 82.8%를 기록했다. 분양된 10가구 중 8가구가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를 달고 시장에 공급된 셈이다.
금리 인상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위기 등으로 장기화된 건설업 침체 또한 중견건설사들의 수주활동을 위축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울시내 재건축 시장이 대형건설사로 사실상 재편되면서, 중견건설사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공사현장의 모습.[엲합]](/news/photo/202502/631788_547089_2836.jpeg)
수익에 직결되는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원가율이 현저히 낮아졌고, 가격경쟁이 동반돼야 하는 재건축 수주전 등에 쉽게 참여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공사비를 낮춰 가격경쟁력을 갖추더라고 결국 수요자들은 대형건설사 브랜드를 선호하기에 경쟁이 어려운 현실이다. 어렵사리 정비사업을 수주하더라도 향후 벌어질 공사비 갈등도 부담요소다.
정비시장이 대형건설사 중심으로 재편되는 가운데, 중견건설사들은 비교적 경쟁이 덜하고, 안정적인 자금확보가 가능한 공공분야 사업에 발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공공 발주 부문으로 눈을 돌리는 사례가 있지만, 이마저도 공사비 현실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남는게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대형건설사의 시공경력이나 분양 주택 브랜드 등에 수요가 쏠리면서 중견건설사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건설업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건설업계의 보릿고개가 장기화 되는 가운데, 중견건설사들의 도산위기마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다.
겹겹이 쌓이고 있는 악재로 인해 건설업종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시장의 허리를 받치는 중견건설사들의 위기는 모른척 할 문제는 아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견건설사들의 자구책 마련도 중요하지만 업계 전반에서의 대형건설사 쏠림현상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뤄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