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슈머타임스=김예령 기자 | 보건당국이 허가 받은 새로운 의료기기가 '신의료기술 평가' 등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제도를 내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안전성 검증 약화와 비급여 남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안전처(이하 식약처), 국무조정실은 21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논의를 거쳐 '시장 즉시 진입 가능 의료 기술' 제도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신 의료기기를 의료현장에서 보다 일찍 활용할 수 있게 3년간 비급여로 즉시 시장에 진입시킨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핵심은 시장 진입 기간의 단축과 절차 간소화 및 안전성 검증·관리를 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은 안전성 검증이 약화하고 비급여가 양산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현재 새 의료기기가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선 우선 식약처의 인허가(최대 80일 소요)를 받은 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기존 건강보험에 등재된 기술인지를 확인해야하며(30~60일 소요) 새 기술일 경우 신의료기술 평가를 거쳐야 한다.
신의료기술평가는 해당 의료기기를 활용하는 의료 기술의 안전성·유효성을 평가하는 절차로 최대 250일이 소요된다.
기존 방식은 평가를 통과한 후에야 건강보험 등재(100일) 절차가 가능하며 이후 건보가 적용되는 '급여' 혹은 환자가 100% 부담하는 '비급여'로 나뉘어 시장에 진입하는 식으로 최대 490일이 걸린다.
업계가 의료기기의 시장 진입이 지연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정부는 그간 신의료기술 평가 유예와 혁신 의료기기 통합심사·평가 등을 통해 기간을 단축했다.
내년 하반기에 도입될 '시장 즉시 진입 가능 의료 기술' 제도는 기존 '선(先)진입 제도'보다 절차가 간소화된다. 식약처 허가 후 기존 기술이 아닌 것만 확인되면 별도 절차 없이 의료 현장에서 즉시 의료기기를 3년간 비급여로 쓸 수 있다.
또한 업체가 원할 경우 허가 절차와 동시에 기존 기술 여부 확인을 거쳐 빠르면 80일 이내에 의료기기의 시장 진입이 가능해진다. 이후 3년이 지나면 신의료기술 평가와 건보 등재 절차를 거쳐 급여, 비급여 등으로 분류된다.
기존 선진입 제도는 '안전성 검증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기에 정부는 '즉시 진입' 의료기기를 국제기준에 따른 개선된 임상 평가를 거쳐 허가하는 등 안전성 관리를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즉시 진입 대상이 되는 의료기기는 정부가 독립적 활용도가 높은 기기를 중심으로 품목을 확정해 공고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디지털 치료기기 △체외 진단 의료기기 △인공지능 진단 보조기기 △의료용 로봇 등 140여 개 품목이 검토 중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일각에선 안전성 검증 약화를 피할 수 없고 비급여를 확대해 환자 부담을 키울 것이라며 비판했다.
현재 신의료기술 평가에서 탈락한 의료기기는 시장 진입이 불가능하지만, 즉시 진입 3년 후 이뤄질 신의료기술 평가에선 등급만 가리기 때문에 평가 결과와 무관하게 계속 시장에 남게 되기 때문이다.
무상의료 운동본부는 지난 9월 공청회에서 이번 방안에 대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의료기기 업계의 돈벌이 길을 깔아주는 것"이라며 "정부는 의료 개혁을 통해 비급여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해놓고도 비급여를 양산하는 방안을 내놨다"고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즉시 진입 의료기기의 부작용과 사고를 계속 모니터링해 문제가 발생하면 퇴출하고, 환자에게 필요하면서 비용 부담이 큰 항목은 3년이 지나기 전에도 직권으로 평가해 건보 급여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