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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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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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수오서재/1만4400원

컨슈머타임스=김성수 기자 | "백 사람이 한 번 읽는 시보다 한 사람이 백 번 읽는 시를 쓰라"

류시화 시의 특징은 인간의 깊은 곳에 있는 다양한 감정을 시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시집의 해설을 쓴 이문재 시인은 "고백하건대 나는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라는 문장 앞에서 꼼짝을 못했다. 고압 전류에 감전된 것 같았다. 한동안 다른 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이때 '당신'은 연인이나 벗일 수도 있고 절대자일 수도 있으며, 갑작스럽게 닥친 병마나 불행일 수도 있다. 그가 누구고 또 무엇이건, 우리에게는 일상적 삶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과 같은 당신'이 있다"고 설명한다.

인생에서 한 번쯤은 시집을 가까이하는 날들이 있다. 시인의 이름도 시의 제목도 기억하지 못한 채 말의 울림에 감동하고 공감할 때가 있다. 그렇게 자기만의 '당신'은 우리를 시로 돌아오게 한다. '너는 너 자신을 떠나는 문이며/ 너 자신으로 돌아오는 문'이라는 시구처럼 우리는 자신에게서 떠났다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그 곁에 류시화 시인이 쓰거나 옮긴 시집이 놓여 있을 때가 많다. 그가 발표하는 매 시집마다 깊이를 더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선사한다. 시인은 삶의 다른 시기에는 쓸 수 없었던 작품을 지금 쓴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그는 독자에게 갑자기 말한다. "이제 알아야만 해/ 정말로 이 삶을 사랑하는지/ 한순간도 심장을 떠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고독을 견딜 수 있는지". 새로운 시집이 발표될 때마다 늘 읽고 싶어지는, 자신만의 존재감을 지닌 몇 안 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시를 읽다 보면 읽을 때마다 다르게 마음에 다가오는 시가 있다.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시로 쓰면,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안고 사는 사람들과 연결된다. 산다는 것은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가는 것이고, 시를 읽는 것은 마음속 파도 하나를 일깨우는 일이다. '당신을 만난 뒤 시를 알았네'라고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가? 류시화의 시에는 그리운 길을 몇 번이고 돌아가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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