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자작나무 숲의 가을, 강원도 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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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자작나무 숲의 가을, 강원도 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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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져버린 숲은 늦가을 바람들의 천지였다. 종횡으로 상하로, 때로는 땅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마른 잎들이 바람의 등을 타고 나부끼고 있었다. 한 시절 영롱하고 찬란했던 기억들을 땅으로 내려 보내고 빈가지로 남아 겨울을 준비하는 줄기들은 고요했다. 조락의 이치를 깨달을 때쯤 이곳을 찾은 이들은 하강하는 낙엽에 옷깃을 여민다. 바람의 굴곡에 기대어 자신들의 세월도 함께 날려 보내는 중이다.

강원도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 언덕을 넘었다. 기억 속에서 자작의 군상들이 희미해질 무렵 나는 다시 이곳을 찾았다. 등성이로 휘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고개를 넘고 작은 개울을 건너 골짜기를 올랐다. 흰 줄기의 나무들이 가득한 계곡으로 들어섰다. 무수한 자작나무 행렬은 지치지 않고 나를 따라 다녔다.

자생은 없다. 원대리 자작 숲은 조림으로 만들어진 원시림이다. 1989년부터 시작된 일이다. 홋카이도나 시베리아 수종이 강원도에 이민 온 셈이다. 최근 재선충으로 근처 소나무 숲 6헥타르가 말랐다. 하지만 이쪽은 아직 건재하다. 자작은 다른 수목과 공존이 어렵다.

자작나무는 백양나무나 사시나무, 포플러의 사촌쯤 된다. 옛 부터 자작은 민초들의 나무로 회자되었다. 사시 떠는 소리가 잡초 같은 민생들을 맞이하는 사운드 같다. 베툴린 성분 때문에 기름기가 많아 화력이 좋다. 자작나무는 겨울 밤 난로에서 "자작 자작-" 타는 소리로 유래된 이름이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서
▲원대리 자작나무 숲에서

일정한 굵기와 같은 높이로 일정한 색으로 일대를 물들이는 것은 그들끼리의 약속이다. 숲길을 오가는 인적 사이로 자작나무는 빽빽했다. 하늘은 보이지만 측면시야의 확장은 허용되지 않는다. 아름다운 밀폐다. 나무는 눈보라치는 겨울을 넘어 무성한 잎과 꽃을 거느린 봄 나라에 이를 것이다.

나뭇잎은 하나하나가 모두 공장이다. 빛을 흡수해 정신의 광합성을 보여주는 진수다. 어두운 산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위쪽 가지들은 빛을 향해 더 위로 뻗어 오른다. 빛이 닿지 않는 아래쪽 가지들은 시간에 따라 떨어져 나간다. 메마른 땅의 위기를 통해 나무는 더 단단해진다. 자연을 수용하고 울림의 소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숨 막히는 성장을 거듭하다가 일정한 때가 되면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모든 잎을 지상으로 내려 보내는 작업이다. 방하착(放下着. 집착을 내려놓는 수행). 슬프고 불안하지만 겨울이라는 전환점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죽은 가지를 버리면서 종말을 가르친다. 옳지 않은 것과 헤어지라고 말한다. 빛을 가리는 모든 행동과 멀어지라고 손짓한다.

무엇인가 견디기 시작하는 계절의 묵묵한 예감이 묻어난다. 겨울은 다가오고 신호등은 없다. 그냥 경계를 넘어올 것이다. 잎들이 하강하며 지나온 흔적들을 지워갈 것이다. 낙엽으로 지는 자작 잎은 무성했던 시절의 수분이 증발하고 푸석한 무늬만 남아 깃털처럼 공중에 흩날렸다.

▲하늘로 향한 자작나무 숲
▲하늘로 향한 자작나무 숲

말라 구겨진 모습으로 하강을 결정한 늦가을, 한 잎 한 잎이 모두 여름에서 걸어 나온 힘겨운 표정들이다. 다가오는 겨울의 운명을 해독할 수 없는 어떤 암시처럼 허공에서 파닥거리다 낙하했다. 힘이 소진된 덧없음, 자작나무 숲을 보겠다는 내 욕망이 사선으로 흘러내렸다. 하루는 벌써 늦은 오후로 접어들고 숲은 깊은 침묵으로 갈아타는 중이다. 여름에 감염된 잎의 끝은 격렬했고 파멸은 놀랍도록 고요했다.

자작나무의 운명을 생각했다. 한 차례 죽었거나 파괴되었던 흔적들, 다시 무너지는 잎들, 그 위로 선명한 새것들이 지나가 쌓이고 결국 나이테로 남아 역사가 되는 숲, 하얀 나무줄기 신비로운 백색이 모여 추위에 견디는 절개, 하늘빛마저 표백해주는 자작의 군락은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언어로 다음 계절을 기약하는 듯 흔들렸다.

아랫마을 식당주인 원 씨 아저씨에게 50년 전 화전민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이 마을의 산 증인이었다. 인재군 인재읍 원대리. 버려진 산중에 70만 그루를 심었고 일반에 공개(2012)된 이후 명소가 되었다. 30년생 자작 40만 그루의 위용이 넘친다. 인제 국유림 관리소의 정성도 한몫했다. 멀리 산들은 안개와 구름을 담는 그릇처럼 보였다. 가파른 산중 자작나무 숲길은 치유와 탐험을 알게 하는 철학적 임도(林道)였다.

▲자작나무 숲속의 공간쉼터
▲자작나무 숲속의 공간쉼터

자작은 곧다. 흰 피부에 규칙적 상처가 있다. 과거의 화려함은 하늘로 나아가는 길목이다. 식수가 시작되고 40년 목전에 이 숲이 완성되었다. 통나무 원두막이며 지친 이들을 거둬들이는 벤치며 숲 속 지상의 모습은 평화와 풍요 그 자체였다.

나무를 예찬한 헤르만 헤세도 숲길을 사랑했다. "나무는 언제나 내게 사무치는 설교자였다. 나무와 이야기 할 수 아는 사람, 나무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은 진리를 경험한다. 나무는 교훈이나 비결을 설교하지 않는다. 삶의 가장 근원적인 자연의 법칙을 노래할 뿐이다".

척박한 땅에서 자라난 가문비나무는 최고의 보물 스트라디바리우스로 재탄생한다. 이 바이올린은 소리로 인간의 영혼을 울린다. 악기가 내미는 공명의 이력서에 인간은 감동한다. 완벽한 형태의 울림에 찬사를 보낸다. 나무가 만들어내는 신비다. 그러니 나는 아직까지 푸른 나무처럼 진리를 알지 못하고 살았다. 마른 나무가 되어야 세상을 깨닫고 받아들인다.

자작나무 숲에서 건져 올린 언어들을 주머니에 담았다. 아름다운 울림을 위한 마음 조율이었다. 자작나무 숲에 머물렀던 모든 시간이 빛나는 '카이로스'의 순간들이었다. 끝이 가까워질수록 정적을 닮아가는 음악의 종지부처럼 얼마 후면 흰색의 섬세한 육각기둥들이 회백색 하늘에서 한계 없이 만들어져 눈으로 내릴 것이다. 겨울이 오는 방향을 향해 먼 시선을 던졌다.

잎이 지는 아름다운 통로를 묵묵히 걸었다. 부스러진 아픈 기억들을 꺼내 만지며 오솔길을 내려왔다. 삶은 고단한 교향곡이다. 음표가 없는 악보다. 이러한 광경을 바라 볼 때마다 나는 더 이상 확신할 수가 없다. 과연 중요한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함부로 단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모든 것은 내 것이지만 내 소유는 아니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으로만 소유할 수는 없다" (쉼보르스카. 폴란드 시인)

▲근대 중국인 수염 같다는 자작줄기의 상처들
▲근대 중국인 수염 같다는 자작줄기의 상처들

자작나무는 상처의 수묵화였다. 마치 하얀 줄기 화폭에 규칙적으로 새겨진 검은 자국들, 가지가 떨어질 때마다 남는 기억의 흔적이다. 방향은 모두가 하늘 쪽으로 화살표시다. 결국 나무의 상처도 디딤의 방향도 푸른 허공이다. 상부에 몇 개 남은 노란 이파리들은 눈이 내리기 전 낙하할 것이다. 낮은 단풍들은 지쳐서 색이 진해지기 전 시든 상태로 매달려 있었다.

차이코프스키의 은은한 클래식 '10'(Octover.가을의 노래)을 귀에 담으면서 낙엽이 내리는 속도에 맞춰 내 발자국들이 숲길에 찍혔다. 이 계절이 지나면 다른 세계의 시작이다. 피아노는 낙엽 지는 속도와 리듬으로 첼로는 해질녘의 무게감과 심오함으로 평온을 유지시켜주는 무게 추였다.

누구에게나 현실은 만족스럽지 못하고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다. 오랜 전 마모되어 빛바랜 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기억도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지나 자작나무의 여름은 떠났다. 화양연화의 추억을 잎 내린 상처에 담고 조용히 계절의 그늘을 관통할 것이다. 그 침묵을 각자 빛바랜 기억에 묻고 살아갈 뿐이다.

숲을 내려오니 이내 어둠이다. 석양을 기다렸다 올라온 하늘의 달은 그림자가 없었다. 달빛 비친 산이 그림자를 만들고 세상이 음영으로 희미해져갔다. 그림자는 거짓이 없다. 때로는 진짜 세상보다 기억 속 그림자가 더 아름답다. 자작나무보다 그 그림자가, 나보다 내 그림자가 더 내면의 정수일수 있다. 그림자 속에 달이 있었다. 그림자속에 자작나무가 서 있었다.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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