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일기장
상태바
다산의 일기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영사/정민/4만원

컨슈머타임스=곽민구 기자 | 다산에게 일기란 무엇이었는가? 왜 철저히 감정을 배제하고 사실만 나열했는가? 이 일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33세 다산이 사학삼흉(邪學三凶)으로 몰려 지방으로 좌천된 후 겨우 상경했다가 다시 외직으로 밀려나기까지 2년간의 일기. '금정일록', '죽란일기', '규영일기', '함주일록'을 다각적으로 분석해 다산이 언표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면밀하게 추적한다.

천주교를 둘러싼 시대적 맥락과 치밀하고 세심한 독법을 통해야만 일기에 숨겨진 다산의 진실을 읽을 수 있다. 학자이자 정치가, 신자이자 배교자였던 '인간 다산'의 복잡한 내면을 생생하고도 정교하게 복원한 역작. 마침내 다산 자신의 목소리로 그의 시대를 더 깊이, 더 정직하게 만날 수 있다.

다산의 일기는 일상의 단상이나 개인적 소회 대신 객관적 사실로만 이뤄져 있다. 어느 날 받은 편지 한 통, 무심하게 언급한 조정 소식 등은 특별한 주제로 귀결시키기도 어렵다. 여기에는 천주교 문제로 좌천당한 다산의 정치적·정략적 의도가 숨어 있다.

그는 천주교 혐의를 벗고 결백을 입증할 알리바이를 마련하고자 했다. 객관적 동선과 대화, 주고받은 문서를 기록으로 남겨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훗날을 위한 증언으로 삼았다.

다산이 하고 싶은 말은 오히려 중간에 인용된 상대의 편지나 시문 속에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즉 다산의 의도는 그가 이런 팩트들을 선별하고 배열하는 시선을 통해서만 포착된다.

치밀하고 세밀한 독법으로 일기의 이 같은 전략적 배치와 계산된 글쓰기를 파악해야 다산 스스로 검열하고 은폐한 행간에서 천주교 배교에 대한 이면과 그의 복잡한 내면 갈등을 읽어낼 수 있다.

금정으로 쫓겨난 후 천주교 지도자 검거에 앞장서기까지 했지만 아무도 다산의 진실성을 믿어주지 않았고,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 보여야만 했다.

다산의 일기는 이러한 안간힘의 결과라는 점에서 모순덩어리다. 천주와 임금 사이에서 엇갈리는 다산의 행보는 그의 우유부단함에 대한 징표가 아니라 서학이라는 거대한 체계와 대면한 18세기 조선의 어정쩡한 스탠스를 보여준다.

다산의 모순은 시대의 모순과 다르지 않다. 다산의 일기를 통해 다산과 18세기 조선을 더욱 객관적이고 인간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책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