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슈머타임스=김성수 기자 | "우리만의 우주가 필요하다. 약하디약한 우리는"
노란 밤의 달리기는 '하루키적 경묘함'을 갖췄다는 찬사를 받으며 데뷔한 소설가 이지의 신작 장편소설로 을지로 세운상가에 터 잡은 청년 예술가들의 일상을 그린다.
책 속 인물들의 일상은 여느 청춘이 그러하듯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하고 싶은 작업이 있지만 생활은 빠듯하고, 상을 받아 명예를 얻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시각예술가 '휴일은' 훌쩍 연상의 애인 '엘'과의 연애는 순탄한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며,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에게서 의외의 서늘한 면모를 발견한다.
늙어가는 가족들과의 관계는 늘 초침을 바라보듯 초조하기만 하다. 이야기는 가까운 사람의 황망한 죽음을 맞아 전환점을 맞지만 노란 밤의 달리기는 슬픔이나 우울에 잠식되지도 침잠하지도 않는다. 비극적 사건에도 굴하지 않고 일상을 이어가는 인물들의 초상은 그게 삶의 본모습임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듯하기도 하고, 현실의 독자들을 위한 위로 같기도 하다.
이 책이 그리는 세계는 종종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분명 어릴 적 여자아이였던 주인공은 엄마가 집을 떠나자 남자가 된다. 그리고 자신이 '엄마들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들이었다면' 엄마가 곁에 남진 않았을지 궁금해한다.
또한 어느 동물원에서는 사람이 몸에 색을 칠하고 스스로 우리에 들어간다. 동물들은 사람처럼 표정을 보이고 행동한다. 논리나 이성으로 따지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현실성은 소설에서 더는 중요치 않다.
청춘과 상실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독특한 필치로 그려내는 솜씨에 독자는 책 속 세계에서 기꺼이 길을 잃는다. 이 같은 소설의 분위기는 작중 배경인 세운상가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늘 재개발이 진행되거나 돌연 취소되는 곳, 무언가 철거되고 또 새로 지어지는 곳, 금세 사라질 것으로 가득한 곳.
책 속에서 세운상가는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소설로써만 만들 수 있는 세계가 되어 오늘의 청춘들을 감싸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