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틀란타의 뜨거운 여름은 콜라 마시기를 재촉하는 계절이다. 코카콜라 뮤지엄. '월드오브코카콜라' 는 축제 마당이었다. 콜라의 역사를 보면서 마음껏 마시고 즐기는 애틀란타 문화의 중심센터였다. 미국을 넘어 세계를 정복한 음료의 대명사 코카콜라는 처음 이곳 애틀란타에서 출발했다.
오래전부터 와보고 싶은 도시였다. 애틀란타는 아메리카 광활한 땅의 남부 중심지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미국 독립이후 합중국 확장의 근대사를 장식해왔다. 링컨이 노예해방을 부르짖으며 남북전쟁의 포연 속으로 진입할 때 조지아주는 남부군 최대의 보급기지였다. 한국보다 면적이 더 큰 땅이다. 영국 왕 조지2세 때(1732) 식민지 편입으로 동부 13주와 출발을 같이 했다. 남부 연합을 탈퇴해 전쟁을 겪었고 패전 후 애틀란타는 주도가 되었다.
초대 주지사 제임스 오클소프 장군은 철저한 도덕주의자였다. 신대륙에 천국 같은 유토피아를 건설하겠다고 세운도시가 바로 애틀란타 다. 영국의 죄수들과 빈민들을 대거 이주시킨 박애주의자였다. 거대한 목화밭은 이지역의 상징이다. 노동력을 메우려고 데려온 흑인들이 정착한 곳이다. 당시에는 주민들의 30퍼센트가 노예였다. 방앗간과 방직공장을 의미하는 밀스(mills)가 도처에 있는 많은 이유다.
조지아주의 처음 주도는 '터미너스' 였다. 원주민 체로키 부족의 영토를 빼앗고 철도를 부설해 연결시킨 식민지 남부의 종착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애틀란타 이전(1868)으로 본격적인 근대도시의 모습을 갖췄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 신이 분노를 참지 못해 물에 잠기도록 형벌을 내린 거인 아틀라스의 이름으로 세워진 도시다.

애틀란타는 남부 비즈니스의 메카다. 코카콜라와 델타항공, AT&T, CNN, 홈디포 등 12개의 대기업 본사가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의 마가렛 미첼 소설로 이 도시를 기억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인종차별 투쟁과 그들의 비극적인 죽음이 담긴 미국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 도시의 상징은 코카콜라다. 톡 쏘는 듯한 탄산의 맛이 묘하다. 코카의 향기가 감싸 쥐는 천상의 맛은 마실수록 중독성이 강해진다.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코카콜라의 비결이다. 오랜 시간 형성된 마니아층들의 콜라 마시기는 이제 '애호'의 단계를 넘어 '중독'의 수준으로 가고 있다. 코카콜라는 단순한 음료인가. 아니면 영혼을 빼앗는 신의 액체인가.
코카콜라는 매년 40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 세계 1등 음료, 신이 내린 인류의 음료라는 이야기가 나올 만 하다. 전 세계 200개국에서 매일 20억 잔씩 팔린다. 시간으로 계산해보면 초당 2만잔씩 마시는 셈이다. 엄청난 판매량이다. '팍스 아메리카' 시대의 상징으로 코카콜라는 강대국 미국의 상징으로 부상해 있다.

처음 코카콜라는 약사 존 스티브 펨버턴이 만든 소화제였다. 부상당한 남부군들을 치료하면서 모르핀 중독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아편중독 없는 대용품을 고민했던 결과였다. 수많은 시도 끝에 코카 잎을 삶은 물에 포도주를 섞어 첫 작품을 내놨다. 코카인은 의료용으로 회수하고 남은 액체를 이용했다. 이때 코카인 함유량은 0.37ppb(약 천 억분의 3) 정도다. 물보다 안전한 수준으로 선전해오는 기초자료다.
펨버턴의 제조 기술을 중간에 에이사 캔들러와 프랑크 로빈슨이 사들여 회사를 설립(1886)했다. 초기의 포도주를 빼고 탄산수를 넣어 '코카콜라'로 작명되었다. '콜라' 는 남부지역 탄산수를 지칭하는 단어였다. 2차 세계대전은 폭발적 수요를 창출했다. 미군이 해외전쟁에 참가하면서 위생적인 물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상황이 기회였다. 전선의 오염수 대체품이었던 셈이다.
유해성 논란으로 미 의회 청문회를 거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코카콜라는 현대 미국의 심볼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한양식품이 1968년 주한미군 보급품으로 처음 수입을 시작했다. 현재는 코카콜라와 스프라이트, 파워에이드가 코카콜라음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올림픽(1928)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0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올림픽 후원 브랜드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타임지 표지에 실린 최초의 음료수라는 기록도 깨지기 어렵다.
워런 버핏은 하루에 코카콜라를 5병정도 마시는 애호가다. 9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아직도 햄버거와 콜라로 식사를 즐기고 있다. 콜라는 건강에 해롭다는 세간의 걱정들을 한 번에 잠재우는 노인이다. "콜라대신 물을 먹고 브로콜리를 장복하면 더 오래 산다는 증거를 아직 보지 못했다" 는 버핏의 고백은 논쟁과 화제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코카콜라의 제조비법을 궁금하게 여겨왔다. 수많은 저널과 경쟁사들이 저명한 화학자들을 초빙해 성분을 분석해봤지만 아직도 수수께끼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코카콜라그룹은 신비의 배합을 마켓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각국에 공급되는 원액과 제조법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지고 있다.
코카콜라의 일반재료는 비밀 같지 않다. 코카 잎 유동액에 구연산과 카페인 설탕, 물, 라임쥬스, 바닐라, 캐러멜, 육두구, 계피에 7X를 배합하는 방식이다. 제조 비밀 해독을 위해 노력해온 작가 마크 핀더그레스트 가 밝힌 분석 자료(1973)다. 문제의 7X(머천다이스7)가 비밀의 영역이다. 다빈치의 성배처럼 사람들에게 신비감을 주는 반전의 스토리텔링이다.
식품의 모든 원료는 철저히 공개해야 하지만 배합과 조리방법은 미국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기업자산으로 비밀을 유지해오는 근거다. 대중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동시에 경쟁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맛의 비법이다. 이 때문에 펩시콜라는 수많은 세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등 제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밋밋한 생수병이었다가 6번의 변신 끝에 지금의 병 콜라가 만들어졌다. 이후 병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골곡 처리된 모양(1957)이 되었다. 인디아나 유리공장 디자이너 알렉산더 사무엘이 코코아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채택된 결과다. 실제로 코카콜라와 코코아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병모양이 코코아 열매를 닮은 이유는 병 내부 액체이동을 통제해 탄산성분을 보호하고 충격에 잘 견디게 하려는 특수 디자인이었다. 독특한 모양이 건강한 신체의 실루엣을 연상시키는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한손으로도 쉽게 잡을 수 있는 그립감이 매력이다.
콜라 제국을 벗어나 밖으로 나오니 애틀란타 올림픽 공원의 한 낮은 태양이 이글거렸다. 갈증은 다시 차가운 콜라를 원했다. 얼음 속에 보관되었던 코카콜라 한 병을 단숨에 들이켰다. 나도 이미 이 음료의 추종자가 된 느낌이다. 액체인데 물보다 맛이 진하고 목으로 넘어가는 청량감은 얼음보다 더 차갑다.

코카콜라는 거장 엔디워홀의 손을 거쳐 팝아트의 대표작으로 재탄생되었다. 사진과 색을 합성한 독특한 기법의 예술작품으로 엄청난 값에 거래되는 명품이 되었다. 단순한 이미지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워홀은 코카콜라 예찬론자였다. "부자든 가난뱅이든 대통령이든 모두 콜라를 마신다. 코카콜라는 모든 이들의 뮤즈다". 나도 동의 한다. 좋은 음료는 인류보편의 언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집무실 책상에는 빨간 버튼이 설치돼 있다. 사람들은 당연히 핵무기 사용이나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의 지시 수단으로 여긴다. 그런데 트럼프는 수시로 이 버튼은 누른다. 콜라를 가져오라는 주문이다. 비서는 즉시 시원한 코카콜라를 대령해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명품 먹거리 하나 정도는 만들어 낼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갈증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렸을 때 든 생각이다. 경제적 성과와 숫자의 지표들은 계속 우상향인데 문화와 일상을 리드할만한 브랜드는 아직이다. 하드웨어 추격전에서 소프트파워의 세계를 뒤흔들만한 독보적 브랜드가 나온다면, 그것이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문화의 줄기를 바꿀만한 창조적 수준이라면. 그때 월드마켓에서 진정한 상위레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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