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1위의 자동차업체인 도요타가 초유의 리콜 사태를 겪으면서 올해 세계 자동차 시장의 판도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감지되고 있다.
도요타는 이번 사태로 그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평가되던 기술력과 안전성에 깊은 흠집을 남기게 됐다.
게다가 도요타의 자존심이던 고급 브랜드 렉서스와 첨단 기술력의 집합체인 하이브리드 프리우스마저 리콜의 수렁에 빠지면서 소비자들로부터의 신뢰를 크게 잃게 됐다.
이에 따라 도요타는 미국 등 세계 시장에서의 점유율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고, 이 틈을 타 유럽과 미국의 경쟁업체들이 점유율 확대에 공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울러 도요타가 미래 성장 동력으로 핵심 역량을 쏟아부었던 하이브리드 분야가 타격을 입으면서 세계의 친환경차 개발 주도권도 유럽이나 미국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도요타 위상 흔들…미국.유럽업체 부상 = 지난 1월 미국에서 캠리 등 모델을 리콜하고 판매를 중단하면서 도요타의 매출은 작년 1월보다 16% 떨어진 9만8천796대를 기록, 1999년 이래 처음 월간 판매량이 10만대 이하로 내려간 것으로 보도됐다.
이로써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17%를 차지했던 도요타의 시장점유율도 2006년 이래 가장 낮은 14.2%로 떨어졌다.
반면 포드 자동차는 지난달 도요타 판매량을 능가하며 25%의 판매신장률을 기록했고, 제너럴모터스(GM) 역시 작년보다 판매량이 14% 늘었다.
같은 일본 업체인 혼다 역시 지난달 말 창문 스위치 결함으로 일부 모델을 리콜하면서 미국시장에서 판매량이 작년 동기 대비 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애널리스트와 업계 전문가들은 세계적인 자동차산업이 회복될 시점에 리콜 사태를 당한 것이 도요타에 더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거대 시장인 미국에서 지난해 고전했던 GM과 포드가 전열을 정비하고 시장 회복을 노리는 데다, 이번 도요타 리콜을 기회로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고객을 끌어오는 공격적인 판촉전략을 펴고 있어 미국시장이 어떻게 재편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도요타의 작년 미국 시장점유율은 17%로 GM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올해는 3위인 포드에 추격당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도요타의 강력한 경쟁자들인 유럽의 자동차 업체들도 공세를 강화하면서 미국과 신흥시장에서의 점유율 확대를 노리고 있다.
특히 2018년까지 일본의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로 등극하겠다고 공언한 폴크스바겐은 이번 도요타 리콜 사태의 영향으로 목표 달성 시기를 더 앞당길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말 지분을 인수한 스즈키의 판매량 230만8천대까지 합칠 경우 860만여대로, 도요타그룹의 지난해 판매대수는 780만여대를 이미 앞선 상황이다.
이에 더해 폴크스바겐은 지난 3일 향후 판매 목표를 중기적으로 800만대, 2018년까지 1천만대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공개하면서 위기를 맞은 도요타에 대놓고 도전장을 던지기도 했다.
현대.기아차 역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가격과 품질로 어필하면서 도요타의 공백을 틈타 선두권 진입을 노리고 있다.
◇하이브리드 기술도 흔들…친환경차 주도권 넘어가나 = 8일 도요타가 프리우스를 비롯한 간판급 하이브리드카 3개 차종을 리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 안팎에서는 도요타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무너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하이브리드차는 도요타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자본과 기술력을 대규모로 투입해 10여년간 연구.개발해온 분야로, 특히 프리우스는 세계 최초의 양산형 하이브리드 승용차로서 시장을 확대해왔다.
1997년 첫 모델이 등장한 이후 잇따라 발표된 신형 프리우스 모델이 일본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 자동차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전 세계 60개 국가.지역으로 팔려나갔고, 도요타를 하이브리드 자동차 분야의 선두 주자로 만들어줬다.
특히 하이브리드는 미래형 친환경차인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에 비해 현실적인 상용화 가능성이 커 주목받았지만, 도요타가 기술을 선점해 세계적으로 다수의 특허를 확보하면서 다른 경쟁업체들의 진출을 막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때문에 GM이나 닛산 등은 전기차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최근 몇 년 사이 상용화 단계에 이른 전기차를 속속 선보였다.
현대.기아차 역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의 과도기 단계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개발에 주력해 2012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요타의 프리우스가 대량 리콜 사태를 맞으면서 하이브리드카 시장은 당분간 주춤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전기차 시장은 더 빨리 확대될 기회를 맞게 됐다.
한편, 이번 사태로 하이브리드의 복잡한 전자제어 시스템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폴크스바겐 등 유럽회사들이 주력하는 클린디젤 자동차가 전기차 이전의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