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권재진고검장 "법조인 덕목은 경청"
상태바
퇴임 권재진고검장 "법조인 덕목은 경청"
  • 운영자
  • 기사출고 2009년 07월 01일 17시 56분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재진 서울고검장
 

권재진(56) 서울고검장이 26년간의 검사 생활을 마치고 3일 퇴임한다.

권 고검장은 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홀가분하지만 검찰에 해결해야 할 문제를 남기고 물러나게 돼 주제넘을지 모르지만, 책임감을 느낀다"며 퇴임을 앞둔 소회를 밝혔다.

검찰총장 내정자 발표 직전까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던 그는 "자리라는 게 중요하지만 사람에게 본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젠 마음이 다 정리됐는데 담담한 나를 보고 주위에서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하더라"며 웃음을 보였다.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와 검찰이 난국을 잘 헤쳐갈 수 있도록 밖에 나가서도 진심으로 돕겠다는 약속도 했다.

검사로서 언제 큰 보람을 느꼈느냐는 질문에 힘든 줄 모르고 열정적으로 수사했던 평검사 시절과 사법연수원 교수로서 후배를 가르쳤던 1997년, 대구지검장으로 부임해 고향에서 일했던 2006년이었다고 답했다.

검사 생활을 마치면서 잊지 못할 사건 하나를 꼽아달라는 제안을 받고는 검찰에 막 입문했을 때 맡았던 `무명씨'의 사건을 아주 자세히 털어놨다.

검사로서 그가 걸어온 남부럽지 않은 이력을 생각하면 예상을 깨는 답이었다.

1987년 서울중앙지검에 검사였던 권 고검장은 당시 선배 검사들에게 `아주 골치 아픈 사람'이라는 말과 함께 사건자료만 1만 쪽인 의료과실 사건의 진정인을 알게됐다고 한다.

치료를 받다가 다리 한쪽이 불구가 된 한 남자가 40여 차례 의사를 상대로 진정서와 민ㆍ형사 고소장을 냈지만 모두 무혐의 처분이나 패소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수사를 해달라며 검찰 청사를 제집처럼 들락거리다 만났다는 것.

권 고검장은 도대체 무슨 사정인가 싶어 날을 잡아 오전 9시께 검사실로 불러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자기 발 모양을 뜬 석고 모형 여러 개와 의학적으로 매우 전문적인 설명 자료를 가져 온 그는 권 고검장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오후 6시가 돼서야 설명을 마친 그는 권 고검장에게 "그동안 미친 사람 취급만 받았는데 이렇게 들어주셔서 감사하다"며 넙죽 절을 한 뒤 그 자리에서 진정 취소서를 내고 사라졌다.

그가 돌아가고 나서 권 고검장은 5분쯤 멍 해졌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권 고검장은 "의학 원서까지 독파한 그의 설명을 사실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법조인, 특히 검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경청과 배려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고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지금까지 그 사건을 잊지 않고 산다"고 회고했다.

검사가 `바쁘다, 논리적이지 않다, 중언부언한다'는 이유로 말을 끊기도 하고 귀를 기울이지 않기 십상이지만 정작 국민이 검사에게 원하는 것은 사건 해결보다 바로 자신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라는 게 평소 지론이자 검찰을 떠나며 후배 검사에게 전하는 마지막 당부였다.

퇴임 뒤 계획에 대해선 "말 그대로 `백수'가 되는 것 아니냐. 여행도 가보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권 고검장은 1978년 사법시험(20회)에 합격해 부산지검 공안부장, 서울 북부지검장, 울산지검장, 대검 공안부장, 대검 차장, 서울고검장을 거쳤다.

유머감각과 친화력이 뛰어나고 사안의 핵심을 간파하는 능력이 돋보이며 업무처리 때 원칙에 충실해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검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퇴임식은 3일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열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투데이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