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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G '디스플러스'(사진 왼쪽)와 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담배 |
최근 태국여행길에 올랐다가 현지에서 담배를 구입한 A씨. 그는 담뱃값에 인쇄된 사진 한 장으로 인해 흡연 욕구가 뚝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흡연의 영향인 듯 검게 썩은 폐의 모습이 전면에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 다른 담뱃갑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한국에서 익숙하게 접했던 형형색색의 디자인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A씨는 "사진이 너무 혐오스러워 담배를 선뜻 살 수가 없었다"며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될 만큼 예쁜 국산담뱃갑들과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 형형색색 국내 담뱃갑 '디자인 열전'
담뱃갑에 혐오사진과 경고문구를 넣어 소비자들의 금연을 유도하는 국제적 흐름에 국내 담배업계가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내수시장의 60%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큰 손' KT&G(구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비난의 중심에 섰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담뱃갑 디자인은 점차 화려함을 더하고 있다. 삽입된 캐릭터와 사용된 색채만 봐도 한번에 담배의 종류를 알 수 있을 정도다. 지난 5월과 10월 각각 출시된 '디스'와 '레종'이 대표적이다.
디스는 니코틴과 타르 함량에 따라 꿀벌(디스 리얼), 고래(디스 플러스), 털이 난 손(디스 와일드)등으로 구분돼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1999년 출시된 '디스시리즈'는 지난해에만 2억5000만갑 이상(점유율 5.6%)을 팔아 치웠다. 애연가들 사이에 히트상품으로 통한다.
레종은 주황색과 파란색, 회색, 녹색 등 네 가지 색에 따라 다른 맛과 향으로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다. 출시 10년째를 맞는 올해까지 5년 연속 대학생선호 담배 브랜드 1위를 석권했을 정도다.
앞선 두 제품은 디자인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공통분모를 형성하고 있다. 모두 KT&G의 작품이다.
문제는 이 같은 행보가 '건강증진'을 앞세운 세계 담배시장 정책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캐나다는 지난 2003년 폐암으로 사망한 유명 모델의 사망 직전 사진을 일부 담뱃값에 삽입하는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는 폐암 말기사진을 담뱃값 상단에 배치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 7월 식품의약국(FDA) 주도로 혐오스러운 디자인의 경고문구를 내년 말 담뱃값 앞뒤 면적의 50%이상을 넣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잇몸과 치아조직에 암세포가 자라 변형된 모습을 비롯, 폐암 수술 직후 숨을 거둔 실제 환자의 사진게재도 고려하고 있을 만큼 공격적이다.
건강증진과 더불어 비흡연자의 간접흡연 피해를 동시에 차단하겠다는 것이 각국의 의도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협약인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담뱃갑에 '저타르', '라이트', '마일드'와 같은 문구 사용 금지를 적시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기업인 KT&G가 이 같은 국제적 실정을 도외시 하고 있다는 비난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
KT&G 관계자는 "'디스'나 '레종' 등 최근 출시된 담배는 수요자들의 요구에 따라 새롭게 디자인 한 것일 뿐 의도적으로 예쁘게 꾸민 것은 아니다"라며 "국가정책이 바뀌지 않는 이상 외국과 같이 혐오사진을 게재하는 것은 어렵다"고 해명했다.
11월 현재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에는 '담배에 관한 경고문구 등 표시' 항목이 포함됐다. 흡연에 대한 경고 문구 및 사진을 보건복지부령에 따라 의무적으로 게재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개정안이 발효되지 않은 만큼 현실적으로 KT&G를 강제할 수는 없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KT&G의 기업도덕성을 질타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은지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사무총장은 "남성 흡연자들이 점차 감소함에 따라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여성과 청소년들을 타깃으로 화려한 디자인의 담뱃갑이 출시되고 있다"며 "국민들의 건강은 뒷전으로 미룬 채 자사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김 사무총장은 "이러한 예쁜 디자인은 흡연욕구를 자극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며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흡연시기가 빨라지도록 하는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직장인 김모씨는 "담뱃갑을 자극적인 디자인으로 꾸민다고 해서 흡연율이 떨어진다는 보장이 없지 않느냐"며 "흡연자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아닌 이상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고 단언했다.
반면 주부 박모씨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끔찍한 담뱃갑 디자인이) '담배는 해로운 것'이라는 인식을 전 연령층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특히 청소년들에 대한 시각적 (흡연율 감소) 효과는 분명 나타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컨슈머타임스 김재훈 신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