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하고 선제적인 투자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다. 투자할 때가 됐다."(7월1일 이명박 대통령)
이 두 가지 발언을 보면 한 달 사이의 상황 변화와 인식이 묻어난다.
상반기 후반부에는 우리 금융시장이 고비를 넘기고 생산현장에서도 온기가 감지되면서 막연히 긍정적인 미래를 엿보는 전망이 많았지만, 하반기가 되면서 미래 재도약을 위해 투자 회복이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당장 급한 불을 끄는 데 성공했고 그런 노력이 밖으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숨 돌릴 틈도 없이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국면이 왔다고 할 수 있다.
민간 투자가 바닥을 기는 한 경제 회복기에 빠른 스타트와 시장 선점을 통한 재도약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불확실성 탓에 투자를 꺼리는 민간을 향해 정부가 파격적 투자 인센티브를 내건 것도 이런 절박감 때문이다.
◇ 생산은 봄..투자는 아직 겨울
지난해 9월 추석 연휴에 들이닥친 미국발 금융위기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번지면서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을 연출했다. 그럼에도 작년 9월과 지난 3월의 위기설을 떨쳐낸 한국경제의 선방은 주목을 받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일 올해와 내년의 한국경제 성장률을 1%포인트씩 높여 잡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한국경제의 빠른 회복속도를 주시하고 있다.
닥터 둠(Dr. Doom)으로 불리는 루비니 교수까지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이는 경제지표 곳곳에서 나타난 청신호에 근거한 것이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1%로 전기 대비 플러스로 전환된 데 이어 2분기에는 2% 안팎의 성장을 내다보고 있다. 1분기에 플러스 전환에 성공한 나라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산업생산이 5월까지 5개월 연속으로 전월 대비 증가한 덕분이다.
물가상승률도 6월에 2%까지 둔화된 데 이어 7월에는 1%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작년 9월부터 극도의 혼돈에 휩싸였던 외환시장도 안정 국면에 접어들고 원.달러 환율이 지난 3월부터 정상화되는가 하면 주식시장도 활기를 되찾았다.
우리에겐 외환위기 이후 10년만의 위기였지만 뼈저린 경험에 기반한 위기관리 능력이 밑천이 됐다. 시장에 달러와 원화를 풀어 신용경색을 완화하는 동시에 수정예산과 추경예산을 짜고 예산을 작년말부터 조기집행해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자동차 구매에 세금을 깎아주는 내수 활성화 정책도 주효했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동력인 수출이 글로벌 경기침체로 더디게 회복될 것으로 전망되고 내수마저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민간 투자지표는 여전히 두자릿수 감소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월 설비투자 증가율은 -13.1%였다. 한 때 -25%를 넘나들며 1998년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때에 비하면 낫지만 8개월째 마이너스의 늪에 빠져 있다. 작년 초부터 부진했던 건설수주는 그나마 나아진 게 지난 5월의 -18.5%였다.
◇ "민간이 바통 이어받을 때가 지금"
이렇듯 투자가 부진하다 보니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공격적 재정 투입에 따라 공공부문 투자를 끌어올렸지만 민간의 자생력을 살리지는 못하고 있다.
1분기 국내 기계수주 가운데 공공부문은 150.5% 증가한 반면 민간은 43.1% 감소했다.
건설수주도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에 따른 토목과 공공부문은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였지만 건축.민간부문은 40% 안팎씩 감소했다.
정부가 민간 투자를 독려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추가적인 재정 투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민간 투자는 한국 경제에 새로운 모멘텀이 될 수 있다.
민간 투자가 일어나야 고용시장의 한파를 물리치고 삶의 질도 개선할 수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5일 "상반기까지는 재정으로 버텨왔지만 이젠 민간의 설비투자 확대로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상황 인식이 절절이 묻어나는 직설적인 어조였다.
실제 조기 집행으로 상반기에 재정 171조원을 풀다 보니 하반기에 쓸 실탄이 100조원 밖에 남지 않았다.
민간이 바통을 이어받지 못하면 가까스로 살려놓은 경기가 힘을 받지 못하면서 바닥이 긴 U자형이나 다시 침체기에 접어드는 더블딥에 처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에 따라 정책적 지원도 투자에 집중되고 있다. 신성장동력, 녹색성장산업을 통해 투자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전례 없는 세제지원책을 내놓았다.
윤 장관은 지난 2일 투자촉진책은 발표하면서 "하반기 들어서면서 민간이 재정의 역할을 이어받아야 할 때"라면서 "민간이 바통을 받아서 투자를 연결해주면 우리 경제가 내년에는 바로 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과감하고 선제적인 민간 투자가 일어날 수 있도록 사회적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점라는 것이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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