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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이동통신 요금이 여전히 세계 최상위 수준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계기로 국내 이동통신 요금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달 국내 이동통신 요금이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한국소비자원의 조사결과에 이은 이번 OECD 보고서는 분석방식의 적정성에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것이 국내 이통 소비자들의 부담이 외국보다 낮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소비자뿐 아니라 정부, 시민단체도 우리나라 이동통신 요금이 높은 수준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편이다. 일반 소비자의 가계지출에서 통신비 부담 수준이 과중하다는 통계 수치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이태희 방통위 대변인은 "통신요금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에 대해 공감하고 OECD 발표결과를 겸허하게 인정하면서 소비자에게 다양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정책수단을 강구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막대한 이통사 이익 = 국내 최대 이통사인 SK텔레콤은 지난해 매출액 14조307억원에 영업이익 1조7천524억원을 달성했다. 남긴 이익의 상당액이 주주 배당과 직원 성과급 등으로 나눠졌다.
3위 사업자인 LG텔레콤도 작년 매출 4조7천980억원에 영업이익을 3천790억원 실현했다.
이통사들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이처럼 막대한 이익을 실현하고 있는 것은 변함없이 고가로 남아있는 이동통신 요금 때문이다.
현재 이통사들의 표준요금은 지난 2004년 1만3천원의 기본료와 분당 20원의 통화료 체제가 바뀌지 않은 채 생색내기용 할인요금제로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있을 뿐이다.
'황금주파수' 800㎒ 대역에 대한 독점체제 논란이 빚어진 이후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이통사들의 품질경쟁은 이미 끝났고 3개 사업자의 요금이 사실상 독과점 담합체제에 들어서면서 요금경쟁도 실종됐다는 것이 한 업계 관계자는 전언이다.
결국 이통 시장에는 단말기 보조금을 통한 마케팅 경쟁밖에 남지 않게 됐다.
녹색소비자연대 전응휘 정책위원은 "정책 당국이 사실상 특정업체의 시장독점을 방치한 결과가 사업자들의 안정적인 이익을 유지시켜 시장 경쟁을 실종시키고 사실상 소비자를 희생시키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외형 확장을 위한 가입자 모집에만 몰두해 많게는 10년 넘게 이통사를 옮기지 않는 기존 가입자에 대한 서비스나 가격 인하는 아예 도외시하는 국내의 이동통신 경쟁환경은 앞뒤가 바뀐 왜곡된 시장의 대표적 형태라는 지적이다.
기존 가입자가 별다른 불평 없이 꼬박꼬박 내는 요금으로 자금을 축적하고 이를 토대로 불과 몇 달 만에 이리저리 가입 회사를 옮기는 `메뚜기족'이나 초.중.고 학생과 같은 신규 가입자를 모집하는 데에만 혈안이 돼 엄청난 판촉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이 한국 이동통신 시장의 현주소라는 얘기다.
과도한 판촉비 지출로 기존 가입자들이 혜택을 봐야 하는 요금할인이나 멤버십 서비스는 점차 줄어들고, 이통사 자체로도 별다른 수익을 남기지 못해 신규 투자재원을 마련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연속인 셈이다.
국가적으로도 미래사회에 대비한 새로운 네트워크에 투자하도록 민간차원의 참여를 유도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 이통사, 국가 경제 어느 분야도 만족하지 못하는 게임이라면 차라리 이동통신 요금을 대폭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계속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이동통신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옛 정보통신부는 신규산업 창출이라는 차원에서 이통사업자에게 접속료 산정 등 여러 혜택을 줬지만, 지금은 그때와 환경이 달라졌다"며 "이통사가 와이브로와 같은 미래 네트워크에 대한 신규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이통 요금을 인하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금인하 가능할까 = 문제는 방통위의 요금인하 정책과 이통업계의 인하 의지다.
방통위는 "시장경쟁을 통해 요금을 인하토록 하는 것이 기본 목표이고 정부는 재판매제도 및 선불제 도입 등을 통해 그런 환경을 조성하려고 한다"면서 수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규제 완화 정책에 따라 정부의 통신요금 조정권한이 사라진 데서 정책수단의 부재를 호소하기도 한다.
특히 정부가 통신업계에 강력하게 투자촉진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통신업계가 자발적으로 요금인하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강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공약에서 제시했던 가계통신비 20% 인하안도 흐지부지된 형국이다.
통신 전문가는 이에 대해 "정부가 통신요금을 높게 책정해 이통사들의 수익을 보장하고 이를 통해 신규사업 재원을 마련하도록 하는 정책의 틀을 언제까지 갖고 갈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며 "미국 등 외국의 경우 이통사들이 직접 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방통위는 이런 상황에서 소량 이용자를 위해 중장기적으로 재판매제도 도입 등을 통해 선불요금제 활성화를 유도하고 중량·다량 이용자에 대해서도 규제 완화나 할인제를 통해 요금수준을 인하토록 한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상대적으로 비싼 무선데이터 요금도 인하를 유도하고 단말기 보조금을 받는 대신 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 단말기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인하를 유도하기로 했다.
이중 선불제는 신용등급에 상관없이 이동통신에 가입할 수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 맞지 않고 재판매 제도 역시 시장성숙기에는 요금경쟁으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따라서 현재 인하폭을 놓고 통신사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무선데이터 요금에 대해 소비자들이 납득할 정도의 과감한 인하를 유도, 소비자 편익과 콘텐츠 시장 활성화를 함께 도모하는 방안이 단기적으로 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IT강국이라는 한국이 무선인터넷 분야에 있어 대외적으로 수치를 공개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용률이 저조한 것도, 미국에서 블랙베리, 아이폰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그런 제품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터무니없이 비싼 무선데이터 요금이라는 걸림돌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신규 가입자 유치 경쟁에 따른 보조금 지급으로 상대적으로 역차별받고 있는 기존 가입자에 대해 사용연한에 따른 획기적인 요금제도가 나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하고 있다.
소비자단체에서는 또 요금인가제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전응휘 위원은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요금 인가제가 남아있는데도 방통위는 계속 시장 자율을 외치면서 요금인가권을 쓰지 않고 있다"며 "특정업체의 요금체계의 독과점 여부를 판단하는 인가권을 활용하면 충분히 요금인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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