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시절 공상과학 소설이나 만화에 등장했던 전기자동차가 이제 현실 속 도로에서 굴러다니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최근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차를 개발해냈지만, 그중에서도 세계적인 자동차업체 GM(제네럴 모터스)이 전기차 '시보레 볼트(이하 볼트)'를 올해 말 미국에서 출시할 예정이어서 그 어느때보다 관심을 끌고 있다.
13일(현지 시간) 미국 미시간주 워런시에 있는 GM 테크니컬 센터에서 볼트를 직접 운전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GM이 '2010 북미 국제 오토쇼'의 언론인 초청 프로그램의 하나로 볼트를 최초로 외부에 공개하고 시승할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한 것.
육안으로 접한 볼트의 첫인상은 아주 깔끔하고 다부진 청년을 떠올리게 했다.
전체적인 라인이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에서는 날렵하게 깎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전기차의 구동 효율을 최대로 높이기 위해 공기 저항을 최소화하는 라인을 구현한 것이었다.
앞유리에서 보닛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물고기 등처럼 거의 유선형에 가까운 곡선을 이루고 있었고, 뒷유리에서 바닥으로 흘러내리는 부분에는 작은 폭의 날개를 만들어 바람이 차의 뒷부분을 감싸면서 저항을 유발하는 효과를 방지했다.
일반적인 차량의 보닛 아래 그릴 부분은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막아버렸다. 역시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한 것인데, 일반적인 차량처럼 열을 식혀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차 내부는 운전석과 조수석을 가로지르는 'T' 모양의 리튬-이온 배터리때문에 시각적으로는 약간 좁은 인상을 줬지만, 일반적인 준중형급 차들과 비교해 4명이 타는 데는 별 불편함이 없는 수준이었다.
좌석에 앉아 시동을 켤 때는 전자제품을 작동시키듯 기어의 바로 왼편에 있는 작은 전원(파워) 버튼을 한 번 누르기만 하면 됐다. 전원 버튼에 파란 불이 들어오면서 운전대 위의 디스플레이 창도 켜졌다.
일반 가솔린이나 디젤 차량에 시동을 걸 때 울리는 '부르릉'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 디스플레이 창이 켜지지 않았다면, 시동을 켠 상태인지 끈 상태인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디스플레이 창의 왼쪽에는 '+'와 '-'가 그려진 전지가 나타나 배터리의 충전.방전 상태가 녹색으로 나타났고, 오른쪽에는 전기가 소진됐을 때 엔진 발전기를 가동시켜주기 위한 가솔린 잔량이 파란색으로 표시됐다.
가속 페달을 밟아 차를 운전하기 시작하니 움직임은 일반적인 차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조용함과 부드러움이었다.
전기 운행 모드에서는 엔진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소음이 작아질 수 있게 된 것이다.
80m 정도의 짧은 구간이어서 속도를 많이 내지는 못했지만, 시속 60~70㎞ 정도까지 달리는 데 전혀 무리가 없었다.
볼트의 최고 속도는 시속 161km, 최대 출력과 최대 토크는 각각 150 마력(hp)과 37kg.m(370Nm)로 일반적인 차에 비해 주행성능이 거의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GM 측의 설명이다.
짧은 구간이었지만 주행하는 동안 일반적인 차와 별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잘 굴러간다'는 측면에서 전기차 볼트는 도시인들의 출퇴근용 차량으로 거의 손색이 없어보였다.
GM은 이 차를 미국인들의 하루 평균 통근 거리인 64km까지 순수 배터리를 이용한 전기로만 주행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 이상의 거리를 가게 되면 배터리 전력이 거의 다 소진되면서 가솔린 등 연료로 구동되는 소형 발전기가 배터리에 전력을 공급하게 되는 `extended range' 모드로 넘어가 약 480km까지 주행도 가능하다고 GM 측은 설명했다.
이 모드에서도 배터리를 100% 충전할 정도로 발전기를 많이 돌리는 것이 아니라 주행에 필요한 만큼인 최소한의 수준으로 발전기를 돌리기 때문에 화석 연료 소모를 최소화한다는 것이 이 차의 친환경 요소다.
배터리 충전도 일반 가정의 전원 콘센트를 통해 할 수 있고 충전 시간도 240V 전원으로는 3시간, 120V 전원은 8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니 충전에 대한 부담도 적은 편이다.
GM이 만든 차량용 텔레매틱스 시스템 `온스타'를 이용하면 아이팟이나 블랙베리 등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웹사이트를 통해 충전 상태를 언제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고, 전기에 연결돼 있기만 하면 원격으로도 언제든지 충전 모드를 작동시킬 수 있다.
비용으로 보면 전기 충전에 드는 비용이 같은 주행 거리에서 필요한 가솔린 연료에 비해 6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다는 것이 GM 측의 설명이다.
이런 점들만 놓고 보면 거의 '꿈'에 가까운 친환경차를 현실에서 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이런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중화하는 데 가장 큰 장벽은 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GM은 아직까지 판매가격에 대해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양산 초기 단계로 그 생산량이 매우 적다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개발.생산 비용에 따른 가격 수준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GM의 시보레 볼트 및 글로벌 전기차 개발 부문장 토니 포사바츠 씨는 "정부에서 전기차 관련 인프라나 보조금에 대한 지원을 준비 중인데, 그 수준에 따라 가격 책정 수준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며 일부 언론에 보도된 예상 가격 3만~4만달러를 부인했다.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 그보다 낮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GM은 볼트를 우선 친환경차에 대한 수요가 많고 인프라가 잘 구축된 지역인 미국 캘리포니아와 미시간 지역에서 출시할 예정이다.
국내 출시 시기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GM은 2011년께 볼트 양산 모델 10대를 보내 시범 운행을 시작하고 한국 시장 출시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계획이다.
볼트가 국내에서도 시판된다면 전기차와 친환경차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을 유발하는 한편, 국내 자동차업계의 친환경차 개발에 신선한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