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고백은 가슴을 울린다. 영화나 활자로 포장된 문답에서도 진실한 마음은 통한다. 스스로를 고립시켜 소박한 화가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1912-2004)이 그랬다. 오래된 그녀의 대담 영상은 묵직한 고요를 느끼게 했다. 흔들리는 눈동자, 어눌하지만 천천히 토해내는 고백, 주름진 손에 들려진 그림 도구들이 모두 깊은 예술의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태양이 강렬한 계절에 만난 강릉 솔올 미술관(2024.1 개관)의 전시는 가슴을 일렁이게 했다. 선과 여백으로 우주를 대변하고 인간의 마음을 옮겨놓은 대작들은 쉽게 만날 수 없는 기회였다. 캐나다 출신 미국화가로 구체적인 인간의 현실너머 초월적이고 정신적인 세계를 옅은 모노크롬과 격자무늬 수평선으로 표현한 세계는 수려했다. 세상은 그녀를 미니멀리스트로 표현했다. 스스로는 추상표현주의자의 자세를 버리지 않았다.
"나는 세상을 그리지 않는다. 세상은 다른 이들이 다 그리고 있다. 내가 세상을 등지고 그림을 그리는 이유다. 미묘한 감정들, 이유 없는 것들, 추상적 답변으로 모두의 삶이 생각보다 방대하다는 이해로 다가선다"
캐나다 서스케치원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했고(1931) 시민권을 얻은 뒤 컬럼비아대학을 마쳤다. 교사가 되어 초기 정물과 풍경 같은 전통적 회화를 탐구하다가 생태적 추상으로(1950) 시선을 돌렸다. 마크 로스코의 숭고한 색에 이끌렸던 마틴은 기독교 바탕위에 노장사상과 선(禪)의 세계까지 동양적 사고에도 심취했다. 기하학적인 구상은 뉴욕이주(1960년대) 뒤에 몰입한 세계였다.

그녀의 고백은 가슴 밑바닥에 잠겨있던 나의 감정을 일깨우는 도구가 되었다. 삶의 우수가 가득 담긴 눈동자의 할머니,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마틴이 86세 때 작업실에서 말한 대로 "내 인생은 이미 늦었다. 오랫동안 작업했다.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고, 또 그리고 또 지우고의 반복 이었다"는 고백은 처연했다. 단순한 선에서 시작된 추상화의 진실로 엮여진 털실 같았다.
작품세계가 정립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4살 때 부친이 죽고 캐나다를 떠났다. 고향 떠나는 기차가 벌판을 오래 지나가는 기억을 평생 간직하며 화폭을 대했다. 젊은 날 그녀는 애써 그린 작품들을 연말마다 모두 태워버렸다. 화폭의 철학이 정리되지 않은 시기의 불안이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타들어가는 그림의 연기 속에서 20년을 지냈다.
그때 텅 빈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시선 끝에 작은 영감이 떠올랐다. 격자무늬였다. 선과 선이 교차하는 단순함속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음을 깨닫기까지 미로의 여정이었다. 격자 나무 시리즈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전시로 처음 관람객들과 만나게 되었다.
분주하고 바쁜 뉴욕생활은 결국 내면의 혼란으로 이어졌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로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방황했다. 탈출이 필요했다. 광활한 대지 뉴멕시코주로 이주했다. 텅 빈 땅의 한 가운데 버려진 생명처럼 살았다. 차이가 없는 작업, 가로선을 고집하면서 보낸 나날들이었다. 너무 단순하고 평범해서 이상한 작업으로 볼 수도 있었다. 자신의 머릿속을 지켜보고 있으면 영감이 떠올라 그리고 또 그렸다. 처절하게 안으로만 파고 든 인생이었다.

마틴은 말한다. "우리 집 바닥의 고요함은 세상 모든 것의 답변이다". 뉴멕시코 평원을 담아낸 가로선 풍경도 아니고 그 어떤 것도 아닌 그림들. 그것들의 의미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참선의 경지를 지나야 했다. 정사각형은 너무 정형이고 공격적이다. 그것을 피하려고 선과 격자의 대립 속에 몰두했다. 자연 속에서 오히려 자연을 그리지 않아 장소와 무관하게 살았다. 격렬한 고독 끝에 격자무늬를 만났고 격자의 부호로 선 느낌이었다.
그녀는 미니멀리즘을 택했다. 모든 작품은 이름대신 숫자로 쓰자고 스스로와 합의했다. 감정이 그림에 기록된다고 믿고 붓질했다. 배열을 포기해야 무한한 공간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동시대의 추상파 화가 잭슨 폴락이나 마크 로스코 그림은 서로 다르지만 텅 빈 생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적능력은 사실과의 투쟁이다. 그 바탕에서 추론한다. 그러나 인생은 추측이다. 기본적으로 알 수 없는 부정확의 세계다.
영감이 오면 모두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야 한다. 머리 비우는 노력이 그것이다.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래야 영감이 오기 때문이다. 인생의 진실이 베어나는 부분들이다. 반복은 누구나 가능하다. 새로운 거 하려면 영감이 필요하다. 창조는 영감의 원천이다. 삶이 나에게 뭘 원하는지 알아야한다. 진취적 열망보다 부드러움을 가지면 더 많은 것을 얻어낸다. 사람들이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마틴의 생각들이다.
가로선을 그릴 때는 세로로 놓고 붓 칠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세월에 파인 주름, 깊어진 눈동자. 칠한 물감이 말랐는지 그대로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냥 한 바퀴 들러보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그것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태도, 사실로 무엇이 좋은지 결정하지 않기, 영감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래도 안 떠오르면 잠을 잔다. 자고 나면 지성이 영롱해졌을 때 뭔가 떠오른다. 그때 발견하는 아름다움이 삶의 진실이다. 그것은 시선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 완벽한 하늘, 풀밭의 바람, 다가오는 어둠은 각기 다른 종류의 행복이다.

마틴은 신비주의자가 아니었다. 영적으로 자신만의 생각이 있지만 일상의 경험과 아름다움에 반응하고 겸손하려고 노력했다. 인간은 옳은 일과 그른 일을 모두 할 수 있다. 마지막은 공허하다. 사랑과 행복 같은 추상적 묘사가 좋다. 날마다 긍정적으로 그냥 나아간다. 부정적인 선택은 남에게도 부담을 준다. 좋아하는 그림만 보았다. 인생은 즐거운 것들에 시간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사고의 틀이 독특한 격자무늬 화풍으로 정립되었다.
그녀는 늘 기준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기를 고수하며 살았다. 선아래 온갖 종류의 우울함과 불편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수를 탐구하는 자세, 그 속에서 인생의 진실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버랩 되는 선의 미세한 차이, 선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나의 시야에서 전시장 바깥세상으로 끝임 없이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옅게 채색된 화폭에 박힌 촘촘한 격자무늬는 있음과 없음의 경계로 보였다. 단색의 유화물감이나 아크릴 물감으로 칠한 바탕에 연필로 가느다란 선을 긋고 그 위에 찍힌 무수한 점들로 내면의 사색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희미한 연필선이 그대로 전달되는 수평선과 분홍, 파랑, 청회색 파스텔 톤으로 채워지는 은은하고 명상적인 작품들은 감동 그 자체다.
격자무늬는 정신세계를 들여다보고 정확하게 그것들을 화면에 채워가는 기법이다. 건강이 악화되어 양로원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매일 작업실을 찾았다. 몸이 쇠약해지면서 그림의 폭은 줄었다. 하지만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작품들은 생애 마지막 순간에 그려진 것들이었다. 뉴멕시코 한적한 시골에서 수도승처럼 조용히 그림만 그리다가 세상을 떠난 마틴의 선택이었다. 요양원에서 임종하는 날에도 붓질을 했다는 기록은 예술에 대한 집념과 숙연함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마틴의 작업실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세상을 등지고(With my back to the world. 2002)' 는 가슴을 뜨겁고 환하게 만들어주었다. 필름이 두 번 다 돌아갈 때까지 침묵으로 지켜봤다. 한사람의 노년과 예술의 깊이가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내 그림에는 사물도 공간도 선도 아무것도 없다. 아무런 형태도 없다. 내 그림들은 빛이고 가벼움이고 합쳐지는 것이고 무정형성이다. 그래서 형태를 무너뜨린다. 당신은 바다를 보고 형태를 떠올리지 않는다. 마주치는 그 무엇도 없어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사물들이 없는, 방해가 없는 세계. 그것은 바다를 보려고 텅 빈 해변을 가로지르듯 시야 속으로 그냥 직행해 들어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강릉 솔올 미술관은 독특했다. 흰색의 선택이 그랬고 소나무 고을에 서있는 모습이 그랬다. 솔올은 주변에 소나무가 많았다. 오랜 세월 동해안에서 밀려드는 해풍을 막아주는 방풍림이 필요했던 이유다. 미술과 건축, 자연이 하나 되는 곳에 솔올 미술관은 우뚝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1934- .미국)의 외관과 실내 구조 디자인은 내내 시선을 붙잡았다.
아그네스 마틴의 전시는 '완벽의 순간들' 로 선보였다. 서울 이태원의 리움 미술관과 오사카 국립미술관, 뉴욕 휘트니 미술과, 페이스갤러리 등의 협업으로 선보인 전시는 깊이와 무게를 다 채우고 있었다. 한국 미술의 위상이 그 만큼 높아진 배경도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작품들 앞에서 아무 말도 내보낼 수 없었다. 완벽한 침묵 속에서 느끼는 내면의 울림으로 족했다. 그냥 어떤 생각도 없어지게 하는 그림 앞에 순수 그 자체만이 반복적으로 마음을 흔들어 댔다. 절제되어 완벽한 작품, 종교적 느낌까지 드는 대작들을 한꺼번에 만난 벅찬 오후였다. 명상에서 오는 영감을 그림으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찾아가는 작업. 모든 인간이 태어나 방황을 하고 마침내 자아를 발견해가는 지난한 수행 같은 어떤것이었다.
"네 마음은 네가 자주 떠올리는 생각과 같아질 것이다. 영혼은 생각에 의해 물들기 때문이다". 화가 김환기의 말처럼 예술은 오직 인간의 가슴으로만 이뤄지는 것이다. 쉬운 길, 가까운 길을 택하면 예술은 나오지 않는다. 아그네스 마틴이 선택한 길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어제까지 기억이 났지만 그 기억은 수시로 망각의 방향을 탄다, 기억은 한순간에 흘러가버리기도 한다. 외로운 사람들은 기억을 먹고 사는 쪽이다. 흘러가면서 깨지는 기억은 더욱 선명할지도 모른다. 마음은 그 자체가 장소여서 마음 스스로가 지옥의 천국, 천국의 지옥을 만들 수 있다. 마음은 세상을 그리는 화가다.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틀림없이 어떤 형태로든지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대상에 따라 형태를 바꿔나가는 유연한 벽이다. 벽은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심연에 존재한다. 그것들을 통과해 길어 올려 진 영감은 오랜 생명력으로 또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정의 교집합을 선사한다.
마틴은 늘 소년의 눈으로 세상을 관찰했다. 느낌이 오면 그냥 뛰어나가고 싶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막연한 뜨거움이 차오르면 그것을 쏟아내기 위해 고독의 심연 속으로 들어갔다. 혼자일수 없다면 예술가가 될 수 없다는 신념을 실천했다. 자연에 응답하는 시간은 그녀의 일생에서 최고의 순간들이었다.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았고 운명의 종점을 아는 모든 이들이 느끼는 공통의 언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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