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메프·티몬의 미정산 사태를 계기로 이커머스(전자상거래) 플랫폼의 불합리한 판매대금 정산 관행이 은행권에서도 속속 확인되고 있다.
플랫폼에 입점해 물건·서비스를 팔아도 해당 소상공인은 길게는 두 달이 넘어서야 판매대금을 받을 수 있고, 돈이 융통되지 않는 '보릿고개'를 버티기 위해 연 6%의 높은 이자를 물고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을 쓰고 있었다.
반대로 플랫폼은 두 달 이상 최대한 이 판매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정기예금 등에 넣어만 둬도 이자를 챙길 수 있는 비정상적 거래 구조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 올해 상반기 선정산대출 취급액도 7천억 넘어…"대출기간 평균 약 60일"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주요 시중은행 가운데 이커머스 플랫폼 입점업체를 대상으로 '선(先)정산 대출' 상품을 제공하는 곳은 KB국민은행, 신한은행, SC제일은행 정도다.
이 대출은 쉽게 말해 플랫폼 입점업체가 판매 증빙(매출채권) 등을 은행에 제시하고 먼저 대출을 받아 부족한 자금난을 해결하다가, 플랫폼으로부터 실제로 판매대금을 받으면 은행에 상환하는 방식이다.
연합뉴스의 취재 결과 이들 3개 은행이 지난해 1년간 취급한 이커머스 플랫폼 입점업체의 선정산 대출은 모두 1조2천300억원이 넘었다. 올해 들어 상반기 취급액만 7천500억원대에 이른다.
다만 수시로 이들 업체가 선정산 대출을 받고 갚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지난해 말이나 올해 6월 말 기준 대출 잔액은 700억원대 규모다.
선정산 대출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은 최장 67일에 이르렀다.
A 은행 관계자는 "선정상 대출의 경우 대출이 이뤄질 때 이커머스 플랫폼이 지정한 정산 예정일까지로 대출 기간이 전산상 자동 산정된다"며 "선정산 대출을 받은 업체들의 평균 대출 기간은 약 60일 정도"라고 전했다.
해당 은행 선정산 대출을 이용하는 입점업체들에 적용된 각 플랫폼의 정산 주기 범위는 ▲ 쿠팡 30∼60일 ▲위메프 37∼67일 ▲ G마켓 5∼10일 ▲ 무신사 10∼40일 ▲ SSG 10∼40일로 파악됐다.
선정산 대출에 적용되는 금리는 현재 약 6% 안팎으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은행이 매출 증빙을 참고하지만, 담보력이 크지 않기 때문에 거의 신용대출에 가까운 금리가 적용되는 실정이다.
건별 대출 기간은 두 달 정도로 짧아도, 판매 채널로서 플랫폼을 포기하지 않는 한 대출도 연중 반복되는 만큼 입점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이자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제조업 대기업 중에서는 동반성장 협약 대출 등을 통해 협력기업이 무이자로 대출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며 "하지만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입점업체들의 선정산 대출 이자를 분담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소비자가 결제한 대금을 플랫폼이 카드사로부터 받아서 활용하다가 두 달 뒤나 입점 업체에 주는 관행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입점업체의 돈을 특별한 이유나 근거도 없이 플랫폼이 두 달 동안 대신 굴려 이자 이익을 챙길 수도 있고, 더 나쁘게는 이번 위메프·티몬 사태처럼 모기업 지원 등 엉뚱한 곳에 지연된 정산대금이 쓰일 가능성까지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