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세계(교향곡 9번)'로 친숙한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Antonin Dvorak.1841-1904)는 기차를 사랑했다. 어린 시절 프라하 근처에 놓이기 시작한 철로에 나가 놀았고 증기기관차가 달리는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어른이 되어서도 틈만 나면 기차역에 들러 노선과 시간표를 외우고 기관사들과 대화를 나눴다. 나이 들어서는 사위에게 지나가는 기차의 엔진번호를 기록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신세계인 미국으로 떠나서도 기차역에 나가는 것은 그의 취미였다.
시미언 피즈 체니(Simeon Pease Cheney. 1818-1890)는 음악학자이며 침례교회 사제였다. 그는 새소리며 온갖 자연의 소래를 기록하고 기보한 책 '야생 숲의 노트'를 남겼다. 체니 사제는 뉴욕 주 제너시오의 외딴 사제관에서 살다 죽었다. 멀리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성당 마당에 나와 습관처럼 새소리를 들었다. 잊혀 질 뻔 했던 그의 기록들은 딸 로즈먼드가 사비로 출간한 유고집으로 남았다.
거의 동시대를 살던 드보르자크는 뉴욕에서 우연히 이 유고집을 읽고 감동했다. 드보르자크는 향수를 달래려고 아이오와의 체코 이민자 마을을 자주 찾았다. 여름휴가를 보내던 그는 고향 보헤미아를 연상시키는 작은 산촌에서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작곡에 몰두했다. 제너시오 사제 체니의 심정으로 써내려간 명곡, 현악 4중주 12번 '아메리카' 는 3일 만에 완성되었다.
보스톤의 한 도서관에서 발견(1982)된 사제의 기보를 바탕으로 프랑스 노르망디 작가 파스칼 키냐르(1948-)는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를 썼다. 우연히 이 작품을 읽은 나는 가슴이 뛰었다. 한동안 프라하를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드보르작과 체니와 파스칼 키냐르. 세 남자의 우연과 인연을 떠올리는 것은 고단한 일상속의 작은 즐거움이었다. 음악축제가 열리던 봄 나는 결국 프라하로 날아갔다.

루돌피눔은 1884년 완공된 체코 프라하의 신 르네상스 양식 뮤직홀이다. 웅장하지 않되 넉넉하고 빼어나지는 않지만 격조가 넘쳤다. 불타바(다뉴브의 체코식 이름) 강변에 세워진 이 건물은 개관당시 참석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태자 이름을 따 '루돌피눔' 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드보르자크 뮤직홀'로 기억하고 있었다.
음악당 중앙 광장에는 체코 국민음악의 아버지 드보르자크의 동상이 우뚝했다. 지붕 난간에는 체코와 오스트리아, 독일 출신 음악가들의 조각상이 일렬로 장식되어 있었다. 드보르자크는 파격적인 연봉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지치고 힘들 때마다 고향 보헤미아의 들판과 숲을 생각했다. 주말이면 좋아하는 기차를 타고 보헤미아 이민자들의 디아스포라를 찾았다.
드보르자크 홀에서는 그의 작품들이 연주되고 있었다. 피아노곡이 지나가고 이어진 '아메리카'의 선율은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우수어린 첼로는 마음과 정신계를 관통시키는 화살이다 숲속에 부는 시원한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려 내는 소리며 지평선과 강의 평화로운 동행이 주는 전원 풍경스케치가 가득 담겨 있다.
드보르자크의 첼로는 흑인영가나 인디언의 감성이 묻어난다. 인디언 노래, 흑인영가 5음계 민요의 음률을 발췌해 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정취가 살아있는 특별한 곡이기도 하다. 신대륙에서 향수를 달래며 얻었던 이방인들의 소리와 정서를 녹여냈다. 감미로운 노스탤지어다. 연주를 따라 눈을 감으면 보헤미아의 산과 들판이 지나가고 낯선 땅 미국에서의 고독이 짙게 베어난다.

체코 동부는 모라비아로, 서부는 체히(Chechy)로 부른다. 체히는 라틴어로 보헤미아다. 보헤미아는 사방이 산맥으로 둘러싸인 마름모꼴의 분지다. 엘베강과 다뉴브강 사이의 지평선에서 피어오른 생명들은 역사를 유랑하는 보헤미안의 정서로 세계인들을 울렸다.
나는 특별히 드보르자크의 '고요한 숲' 과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 를 사랑한다. 고요한 숲(Silent woods)의 첼로 1번선 소리와 잔잔한 비브라토의 깊고 깊은 맛은 마치 울창하고 고요한 녹원을 마차로 가로지르는 느낌이다. 여성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의 연주라면 최고의 호사다. 하늘을 배경으로 낙엽이 흩날릴 때 가장 어울린다.
드보르자크는 프라하 북부 블타바 강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정육점을 가업으로 잇게 하려는 부친 때문에 도축시험사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음악 선배 스메타나를 따라 체코 국민음악운동 쪽으로 인생을 정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정부 장학금 시험을 거쳐 브람스에게 배웠고 그가 추천한 '슬라브 무곡' 은 드보르자크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 내셔널 음악원 초청(1892.51세)으로 조국을 떠난 드보르자크는 '신세계 교향곡' 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인종불문하고 재즈와 블루스, 아메리카 원주민 음악까지를 모두 수용한 결과였다.

체니 사제의 새소리들은 드보르자크의 협주곡으로 되살아났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뒤 파스칼 키냐르의 명저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새 소리와 새 이름 외우기를 좋아했던 한 남자의 인생은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에 잔잔하게 녹아있다. 풀 뽑고 화초를 함께 가꾸던 아내가 지병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뒤 어린 딸의 이름(로즈먼드)을 아내이름(에바)으로 바꿔 부르며 지순한 사랑을 고집했다.
"에바의 정원 가꾸기-에바의 죽음-체니의 정원 가꾸기-체니의 죽음-로즈먼드의 정원 가꾸기"
이름을 바꿔가며 흐르는 대지의 강물처럼 시간과 인생은 그렇게 역사가 되었다. 모든 이들의 삶이 또한 그럴 것이다. 마치 소설과 희곡의 중간 같은 이야기. 체니와 로즈먼드, 죽은 아내 에바의 초혼극 같은 소설이다. 파스칼 키냐르는 출간 즉시 프랑스 도빌 시의 '책과 음악상' 을 수상했고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공쿠르 상)을 받았다.

추상파 화가 마크 로스코의 화폭에 칠해진 어둠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그 자리에 무지개가 떠오르는 느낌이다. 외로움과 고통 다음에 찾아오는 기원의 새소리들이 이어진다. 마침내 음악이 멀어지고 깃드는 평화와 고요. 그리고는 침묵이다. Silence. 21세기 들어 작곡가 올리비아 메시앙은 "새소리는 이 지구상 최고의 음악" 이라고 적고 있다.
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는 체니 사제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언어로 간직되었다.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는 연극배우 정동환 주연으로 국내 무대(세종문화회관. 2021)에도 올려졌다. 인간내면의 심연을 건져 올린 수작으로 평가받았다.
"생명이 없는 사물에게도 그들만의 음악이 있다. 수도꼭지에서 반쯤 찬 양동이 속으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라". 사제 시미언 피즈 체니의 노트(기보) 마지막 구절이다.
드보르자크와 작가 파스칼 키냐르처럼 나도 이 대목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인생에서 고독이나 슬픔은 불행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세계를 정화시키는 필연적이고 아름다운 동반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