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는 이미 그룹의 중추가 됐지만, 이번 인사로 그룹 내 위상과 역할이 한층 강화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COO(최고운영책임자) 사장 내정자가 경영수업을 받아온 삼성전자 출신 인사들이 그룹의 새 컨트롤 타워인 미래전략실에 대거 전진배치됐기 때문이다.
◇새 '컨트롤 타워' 진용, 제일모직→삼성전자 '권력 이동' = 지난 3일의 삼성 사장단 인사 때 함께 발표된 미래전략실 인선 내용을 보면 산하 6개 팀 중 5개 팀의 장이 삼성전자 출신이다.
전략 1팀장(전자 계열사 담당)인 이상훈 사장은 삼성전자 사업지원팀장을 지냈고, 전략 2팀장(전자 외 계열사 담당)인 김명수 전무는 삼성전자 DMC 부문 지원팀장과 경영지원실 지원팀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또 인사지원팀장인 정유성 부사장은 삼성전자 경영전략팀장과 인사기획그룹장을 거쳤고, 경영진단팀장(감사 담당)을 이끌게 된 이영호 전무는 삼성전자 감사팀 전무로 일했다. 이 전무는 삼성SDI 전신인 삼성전관으로 입사했지만, 구조조정본부와 전략기획실을 거쳐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겼다.
이밖에 경영지원팀장(재무 담당)인 전용배 전무는 삼성전자 회장실 2팀 담당임원과 경영전략팀 담당임원을 역임했다. 전 전무는 입사를 삼성생명으로 했으나 2000년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2004년 다시 삼성전자로 소속을 바꿨다.
커뮤니케이션팀장(홍보 담당)인 장충기 사장만이 삼성물산 출신이다.
과거 삼성의 컨트롤 타워였던 구조조정본부와 전략기획실이 이학수ㆍ김인주 고문 등 제일모직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룹 조직의 중추에서도 세대교체형 '권력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미래전략실 팀장으로 발탁된 인물들은 이재용 사장 내정자와 직간접적으로 호흡을 맞춰온 것으로 알려져 '이재용 시대'를 준비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포스트 이건희' 경영승계 구도 '윤곽' = 재계에서는 이번 인사가 삼성의 경영권 승계 구도를 한층 명확히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에버랜드 전무는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겸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 담당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까지 맡았다.
부사장 단계를 건너뛰고 초고속으로 이뤄진 이 전무의 승진과 그가 새롭게 부여받은 역할은 장래에 이뤄질 '삼성그룹 3분할론'의 밑그림을 가늠케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42) 사장 내정자가 전자·금융 계열사를 맡고, 장녀인 이부진(40) 사장 내정자는 유통·레저·서비스 계열을 책임지게 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또 조만간 단행될 임원 인사에서 부사장 승진이 유력한 차녀인 이서현(37) 제일모직·제일기획 전무는 패션·화학 계열을 맡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자녀들에게 전자와 유통, 식품, 제지 부문을 나눠줬듯이 '포스트 이건희 시대'에는 3남매가 3분할하는 구도로 계열분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사장단 인사에선 그 신호탄이 쏘아 올려졌다는 것이다.
◇이건희, 그룹 회장 언제 되찾을까(?) = 삼성을 이끌고 있는 이건희 회장의 현재 공식 직함은 삼성전자 회장이다.
한 계열사 회장 직함으로 그룹 경영을 관장하는 다소 이상한 모양새인 것이다.
이 때문에 재계 주변에서는 이 회장이 2008년 4월 전략기획실 해체 발표와 함께 내놓았던 그룹 회장 직함을 되찾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회장은 물러난 지 23개월 만인 지난 3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경영에 복귀한다고 선언했다.
당시 이 회장이 그룹 회장이 아닌 전자 회장으로 경영복귀를 발표한 정확한 배경은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지만, 사회적 여론 등을 고려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삼성 특검 수사 결과에 따른 재판이 완전히 끝난 지 4개월 만에 특별사면을 받고, 이어서 3개월 만에 경영복귀를 하는 상황에서 그룹 회장 직함은 다소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전략기획실이 새 옷으로 갈아입은 미래전략실로 공식 복원되는 등 특검 사태 이전의 상태로 모든 게 정상화된 만큼 이 회장도 옛 직함을 되찾을 공산이 커졌다.
삼성 계열사의 한 임원은 "삼성전자 회장이냐 삼성그룹 회장이냐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룹 조직이 복원된 만큼 회장님이 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직함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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