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일.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PMP, 내비게이션 등 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 제조업체인 코스닥 상장사 아이스테이션㈜에 대해 1억원에 가까운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과거 이 업체가 제조한 일부 PMP의 지도업데이트가 원활치 않아 피해를 입었다며 사용자들이 소비자원에 집단피해구제를 신청, 그에 따른 '분쟁조정'의 결과물이다.
표면적으로는 피해자들과 대립각을 세우던 아이스테이션 측이 결국 '항복'한 것으로 비쳐지나, 실상은 달랐다.
◆ 1심 법원 "아이스테이션, 배상책임 없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이하 조정위)는 이날 아이스테이션이 제조한 PMP 일부 모델로 인해 사용자들이 손해를 본 사실이 인정된다며 8344만원을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조정위의 분쟁조정이 성립된 경우 그 내용은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있다. 조정이 성립된 후 업체 측이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서울지방법원으로부터 조정위가 집행문을 부여 받아 강제 집행할 수 있다.
조정위에 따르면 집단분쟁조정 결정을 수락한 소비자는 총 1844명. 이들은 모두 구입시기에 차등을 둔 배상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1인당 평균 4만원 안팎 꼴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정위는 집단분쟁조정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 소비자들도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아이스테이션 측에 배상(보상)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주문했다.
문제가 된 제품의 판매대수는 총 10만여대 안팎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업체 측이 적지 않은 금전적 손실을 떠안게 된 셈이다.
이 같은 일련의 파열음은 지난해 9월 내비게이션 기능이 탑재된 아이스테이션 PMP 제품 일부 사용자들로부터 불거졌다. 적용된 지도인 '꾸로맵' 업데이트가 일방적으로 중단됐다며 소비자원에 집단피해구제 신청을 냈던 것.
아이스테이션 측이 지도 업데이트를 하지 않아 다른 제품으로 바꿔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이에 소비자원은 '소비자기본법' 제68조 제2항에 따른 집단분쟁조정 절차를 개시하기로 지난 5월 결정, 약 5개월여 만에 기나긴 여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피해자들과 아이스테이션간의 마찰→ 피해자 집단피해구제 신청→ 아이스테이션 패배'식으로 사건이 종합 요약된다. 하지만 그 사이 업체 측 입장에서 억울할 수 밖에 없는 큰 사실관계가 묻힌 것으로 확인됐다. 법원의 판결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집단피해구제 신청 이전인 2005년 피해자들은 한차례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1심 법원은 원고 패소판결을 내린 바 있다. 아이스테이션에 배상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 "고객유치차원의 '광고비'로 생각하자"
'꾸로맵', 즉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던 A사(2005년 이전 부도)에 책임이 있을 뿐 하드웨어를 생산한 아이스테이션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A사는 부도 이후 10월 현재 중소 IT업체인 B사로 인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스테이션이 아닌 B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분석이 법원의 1심 판결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 조정위의 이번 '배상' 결론에 대해 아이스테이션 측이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스테이션 측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소비시장을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본 일종의 '투자' 개념으로 받아들인 분위기다.
아이스테이션 고위 관계자는 "조정위의 분쟁조정을 거부해 다시 법적인 절차를 밟는다 하더라도 1심에서 한차례 이긴바 있어 (아이스테이션이) 불리하지 않다"면서도 "기업이 힘없는 개인을 상대하기 보다는 도산한 회사의 몫까지 도의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장기적으로 좋지 않겠느냐는 (채종원 아이스테이션) 대표의 결단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함이 취지"라며 "서비스 정책만은 다른 경쟁사 대비 최고 수준에 맞추자고 채 대표가 선포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1억원에 가까운 배상금을 고객유치차원의 '광고비'로 생각하자며 채 대표가 직접 분쟁조정 결과에 반대하는 내부 직원들을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이 관계자는 "분쟁조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 중 일부는 우리 회사가 피해보상을 미루다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처럼 해석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아이스테이션 측의 '통큰' 행보가 어떤 결실을 맺을 지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