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타임스 김종효 기자] 신승훈을 일컫는 수식어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결국 '발라드 황제'로 귀결된다. 그만큼 신승훈은 발라드를 부를 때 가장 신승훈답다. 반대로 말해 절절한 발라드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을 주는 것이 뮤지션 신승훈의 큰 역할이다.

신승훈은 지난 10월 14일부터 10월 30일까지 3주간 매주 금·토·일요일, 9일간 진행된 소극장 콘서트로 이같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신승훈이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진행한 소극장 콘서트 '라이브 액츄얼리(Live Actually)'는 신승훈 음악인생 26년간 처음 갖는 소극장 공연으로 관심을 모았다.
그간 신승훈은 매년 대형 공연장에서 연말공연 '더 신승훈 쇼'를 진행해왔다. 한 편의 1인 대형 뮤지컬을 보는 듯한 화려함과 세심한 무대 장치, 밴드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해 웅장한 느낌을 주는 요소를 과감히 버리고 소극장 공연을 택한 것은 26년차 가수 신승훈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처음 갖는 소극장 공연이라지만 신승훈은 역시 노련했다. 신승훈은 소극장 공연의 장점을 백배 살리고 대형 공연장에서 가져올 수 없었던 요소들을 목소리로 채워넣는 과감함을 보였다. 그만큼 자신의 목소리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다.

신승훈의 소극장 공연은 마치 팬미팅 같았다. 기자는 9번의 공연 중 두 번을 갔는데 자신의 공연에 처음 온 사람들이 있냐는 신승훈의 질문에 손 드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오랜 팬들이 자리했다. 하긴 9번의 공연이 빠른 시간에 매진된 것을 보면 이미 이 오랜 팬들은 신승훈이 준비한 작은 선물에 설레하며 본인이 갈 날짜를 정해놓고 티켓팅을 하루하루 기다렸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경력이 오래된 가수와 그만큼 오랫동안 그를 바라본 팬들은 마치 친구같다. 아이돌의 "사랑해요"라는 말 대신 같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한 가수가 "지금 내 앞에서 내 노래를 부른거야?"라는 면박주는 농담에 더 까르르 웃고 좋아한다. 늦은 나이까지 결혼은 못했지만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예쁜 친구들을 둔 가수,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이해하기에 가수가 부르는 곡에 담긴 진심을 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는 팬들. 신승훈과 팬들의 관계는 그런 존재다.
신승훈은 작아진 공연장 속에서 팬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눈을 맞추며 그간 연말공연에서 잘 부르지 않았던 곡을 선사하는 것은 팬들에게 큰 선물이었다. 팬들도 신승훈의 모습을 더 가까이 볼 수 있기에 기자 역시 신승훈의 눈웃음을 보았으나 남자인 본인이 아닌, 기자 뒷좌석의 아리따운 여성 관객에게 보낸 것이라 생각해본다.
신승훈은 '레어곡'으로 확실한 팬서비스를 했다. 작은 공연장을 꽉 채우는 신승훈의 목소리는 별도의 악기가 필요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였다. 오히려 대형 공연장보다 집중도는 훨씬 좋았고 신승훈 역시 오랜 팬들 앞에서 '레어곡'에 대한 반응을 검증해보기도 했다.

신청곡 시간은 소극장 공연의 백미였다. 기자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신승훈이 가장 멋진 때는 화려한 치장을 하고 무대에 섰을 때가 아니라, 그의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어쩌면 목소리와 더불어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통기타를 메고 자리에 앉아 악보를 넘길 때다. 신승훈은 마치 데뷔 전 대전의 한 카페에서 신청곡을 받아 불렀을 때로 돌아간 듯 팬들의 신청곡을 즉석에서 연주하며 불러 잔잔한 감동을 줬다.
특히 '신승훈의 팝송' 하면 떠오를 정도로 신승훈화(化) 시킨 돈 맥클린의 '빈센트(Vincent)'의 첫 소절 'Starry, Starry night /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를 부를 땐 팬들 모두가 소녀로 돌아간 듯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감상에 젖었다. 신승훈이 기타를 튕기며 부르는 '빈센트'는 수년을 들어도 좋다.
신승훈은 상대적으로 준비 시간이 짧다는 것을 소극장 공연의 장점으로 꼽았다. 대형 공연장에서의 '더 신승훈 쇼'가 6개월 이상 준비 시간이 소요되는 것에 비해 소극장 공연은 약 3개월 정도가 걸린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는 소극장 공연을 자주 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나온 발언이긴 했지만 사실 기자는 이 발언에서 불과 3개월만에 준비된 무대가 이 정도였나 하고 놀랐다.
신승훈이 '불과 3개월'만에 준비한 무대는 빼곡히 가득 차 있었고 꾸준히 변화했다.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온 스태프들이 곡의 변화에 따라, 신승훈의 손짓에 따라 정확한 조명과 무대 효과로 무대를 더 빛냈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사랑을 노래하는 곡에서 분위기를 더욱 로맨틱하게 만들었다. 절절한 발라드에서 템포 빠른 율동-댄스가 아니다- 곡까지 소화하는 신승훈의 음악적 스펙트럼과 곡 배치는 오랜 시간 공연을 해온 신승훈의 노하우가 빛났다.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재치있는 말솜씨가 가득 섞인 농담 속에 웃다가 목소리 하나로 사람을 들었다놨다 할 수 있는 신승훈의 노래에 가슴 저릿한 시간 속에 신승훈의 무대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했다. 2시간 30여분의 시간 동안 신승훈과 팬들은 서로의 우정을 재확인했다. 팬들은 신승훈이 던져준 장미꽃만이 아닌, 가슴 깊이 전해진 진한 선물을 한아름 안고 돌아갔고 신승훈은 여느 때처럼 쩌렁쩌렁한 감사 인사로 고마움을 전했다.

누군가는 신승훈의 목소리가 변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신승훈의 인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한다. 심지어 누군가는 신승훈이 늙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승훈은 리스너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예의 그 미성에 더 관록있는 창법을 장비해 자유자재로 여러 감성을 목소리에 싣게 됐다. 이젠 차트에 연연하기보다 깊이 있는 음악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신승훈은 팬들과 멋지게 늙어가며 50대의 청춘을 보내고 있다.
신승훈은 '발라드 황제'다. 그건 큰 무대서도, 작은 무대서도 변함이 없다. 언제나 목소리로 누군가를 울리고, 목소리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하고, 누군가의 기쁨을 극대화한다. 그래서 11월 1일, 데뷔 26주년을 맞은 신승훈은 여전히 '영원한 발라드 황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