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융'의 전형적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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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금융'의 전형적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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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원 KB금융 회장 내정자가 31일 사퇴 의사를 밝힌 것은 정부가 무언(無言)의 압박을 가했기 때문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황영기 전 회장의 불명예 퇴진에서 이날 강 내정자의 사퇴로까지 이어진 KB금융 회장 인선 과정의 파행은 당국이 민간 금융회사 지배구조를 뒤흔든 '관치금융'의 전형적 사례라는 지적이다.

독립적인 사외이사들이 뜻을 모아 강 내정자를 추대한 상황에서 정부가 사외이사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KB금융에 대한 강도 높은 검사에 착수한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관치금융의 부활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전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차원의 규제강화 움직임에 편승해 구시대적 악습으로 치부됐던 관치금융이 다시 고개를 들고 화려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강 내정자의 사퇴는 정상적인 흐름이 아니다"라면서 " 금융감독 시스템이 보다 투명한 방향으로 개선되고 금융회사의 자율 경영이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준 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는 아예 "관치금융의 전형"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일부 사외이사에게 잘못이 있다면 문책하면 될 일인데 왜 시스템까지 망가뜨리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국내 금융시스템은 수십 년 전으로 후퇴한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식은 민간이 갖고 있지만 실제 경영에는 정부ㆍ감독이 입김이 막강하게 작용한다는 뜻으로 KB금융의 지배구조를 `민유관영(民有官營)'이라고 표현했다.

이 같은 상황 전개는 KB금융 내부의 혼란에 그치지 않고 국내 금융계와 정부에 대한 국내외 시장 참여자들의 불신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말로는 금융 선진화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는 격앙된 반응도 나온다.

김문호 금융노조 사무처장은 "앞으로 다른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도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금융회사들이 정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권영준 교수도 "실적보다는 정권이나 정부에 기대는 CEO만 자리를 보전할 수 있게 돼 정상적인 은행 경영이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최근 당국이 보여준 행태는 개발독재 시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반시장적 관치"라며 "관치금융은 금융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심각하게 저해할 뿐 아니라 시장질서를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당국이 민간 금융회사 인선에 개입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한다면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이 높은 국내 금융시장의 대외 신인도에 금이 간다"며 "청와대가 즉각 나서서 당국의 반시장적 행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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