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국과 일본정부의 '신뢰 온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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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과 일본정부의 '신뢰 온도차'
  • 정진영 기자 jin@cstimes.com
  • 기사출고 2013년 06월 10일 0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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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정진영 기자] 지난 2011년 3월 규모 8.9의 강진이 일본을 덮쳤다. 일본 동북부 이바라키현 인근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은 도쿄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바라키현에는 대규모 정전 사태가 일어났다.

소식을 듣자마자 도쿄에 사는 일본인 친구에게 안부 메일을 보냈다. 다음날 저녁 무렵 답장이 왔다. 물이 나오지 않아서 샤워를 하지 못하고 있지만 다른 불편한 점은 없다고 했다. 역사상 최악의 재앙 중 하나라 불리는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치고는 지나치게 침착했다. 메일 말미에서 그가 한 말은 놀라웠다. "정부로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

지난달 31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머리를 숙였다. 여름철 전력수급 전망 및 대책을 발표하고 나서다. 지난 5일 전력거래소는 올 들어 처음으로 전력수급 경보 '관심'을 발령했다. 윤 장관은 20개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만나 절전에 동참할 것을 주문했다. 계약전력 5000㎾ 이상인 기업체 등 2836곳의 전력 사용량을 3∼15% 의무적으로 줄이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여름철 전력수급대책도 발표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표정은 싸늘하다.  

전력 대란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지난 겨울 혹한이 이어졌을 때도, 지난해 여름 폭염이 찾아왔을 때도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렸었다. 지난 2011년 일어난 '9.15 정전 대란' 이후 작년 한 해에만 75차례에 달하는 전력 수급 경보가 발령됐다. 설상가상으로 위조 부품 파문에 휘말린 원자력 발전소가 무더기로 가동이 중단됐다. 올 여름 전력난은 이미 예고됐던 일이다.

매년 발생되는 전력 수급 비상에도 정부는 '절전'을 강조할 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원전 비리는 반복됐다. 이번 여름을 절전해서 넘기면 또 다른 전력 대란이 없으리라 확신할 수 없다.

해답은 '신뢰'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원전 비리와 관련해 "국민의 신뢰가 곧 최고의 소통"이라며 "잘못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밝히고 하나하나 바로잡아나가겠다"고 말했다.

원전 비리나 전력 수급 등은 시민의 생활과 안전에 직결되는 문제다. 이런 중요한 문제에 있어 시민들이 정부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실천하게 하기 위해서는 신뢰가 선행돼야 한다. 비리는 철저히 수사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고, 또 다른 전력난을 막을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이 논의돼야 한다.

원전 사고와 대지진 참사에 일본 정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은 침착하게 행동했다. 정부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날 수 있는 상황에서 이전까지 쌓아왔던 신뢰 프로세스는 빛을 발했다. 그들은 자발적인 절전운동을 벌이고, 정부의 지시에 따랐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일본 정부는 재해 발생시 석유∙LP가스 공급 부족에 대처하기 위해 석유비축법을 개정했다. 최악의 전력난이 우려되는 지금 우리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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