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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이은정 기자] 요즘 채권시장에 어울리는 말이 있다. '수심가지 은심난지(水深可知 銀心難知)'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수심가지 인심난지(水深可知 人心難知)'의 '사람 인(人)' 대신 '한국은행(銀)'을 넣은 것.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높은 가운데서도 한국은행이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아 시장 참여자들이 금리 예측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채권시장에는 금리인하 기대감이 뚜렷했다. 미국, 유럽 등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고조돼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두드러졌고, 새 정부 출범으로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등 대내외 상황이 금리인하 기대감을 키웠다. 채권시장 수급도 좋아 국고채 3년물이 2.63%까지 내려가면서 사상최저치를 경신하는 등 채권 수익률 하락세가 이어졌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내정자 지명 시점부터 채권시장에는 금리인하 기대감이 팽배해졌다. 경기부양을 위해 적극적인 금리인하를 추진할 것이라는 비둘기파적 성향이 짙게 표출됐기 때문.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당초 현재의 금리수준이 충분히 완화적이라며 동결 뉘앙스를 풍기다가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서는 정책공조 발언에 나서며 3월 인하설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정부조직 구성이 난맥상을 보이며 3월 금리인하가 물 건너 가고 4월 인하설이 급부상하고 있다. 증권사 연구원들이 내놓는 예측 리포트만 보더라도 얼마 전까지는 3월 금통위에서 금리인하를 기정사실화했는데 그 공이 다시 4월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현재 시장에서 볼멘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은 새 정부 들어 금리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이 원하는 것은 예측 가능성인데 한은의 정확한 스탠스가 없기 때문에 두루뭉술 안갯속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얘기다. 기준금리는 작년 7월과 10월에 인하된 이후 계속 동결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경기 저성장 속에 금리인하 기대감은 치솟고 있는데 인하할 듯 하다가 또 시기가 미뤄지다 보니 '실기론'이 매번 불거진다. 자칫 선제적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 십상인 것이다.
한국은 올해 2%대 성장이 예상되는 등 저성장의 늪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미국 다우지수가 사상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글로벌 증시 상승세가 확연하지만 시퀘스터 등 해결되지 못한 과제도 많다. 또 이탈리아 총선 이후 상황이 불투명해지면서 유로존 문제가 언제 다시 터질 지 모른다. 글로벌 증시 상승 이외에는 사실 경기가 호전된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3년만기 국고채 수익률이 기준금리를 크게 밑돌고 있는 것은 시장이 금리정책 방향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인하 시점이 계속 미뤄지기만 한다면 실제 금리인하를 단행했을 때 정책결정에 대한 시장반응이 원하지 않는 쪽으로 나올 우려가 있다. 만일 금리 인하가 계속 미뤄지다가 거꾸로 인상이 된다면 금리인하를 기정사실로 굳히고 있는 시장은 큰 충격에 휩싸일 것이다.
현재 시장이 원하는 것은 최소한 예측 가능한 신호를 보내달라는 것이다. 한은이 계속해서 애매모호한 태도로 있다가는 통화정책이 신뢰라는 발판 위에서가 아니라 금리인하라는 허상에서 헛돌다 끝날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