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아시아 스타 등려군의 죽음. 치앙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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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아시아 스타 등려군의 죽음. 치앙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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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엔미미(첨밀밀. 1997년). 홍콩 영화 가운데서도 화면이 아름답기로 꼽히는 작품이다. 리밍(여명)과 장만위(장만옥) 주연 필름에 가수 덩리쥔(登麗君 등려군.1953-1995)이 불을 붙였다. 티엔미미는 20세기 초 일본의 만주점령시대 가수 리샹란이 부른 인도네시아 민요다. 노래가 영화로 만들어진 수작이다. 이 주제곡은 덩리쥔의 대표 노래다. 좋은 노래는 국경이 없다. 아시아를 넘어 할리우드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영어러브송이 다시 중국어로 번안되어 국제적인 노래가 되었다.

한국의 아리랑, 말레이시아의 '노야와 바바', 태국에서도 같은 리듬의 노래가 유행했다. 처음 멜로디만 들어도 달콤한 냄새가 풍긴다. 그리움을 부르는 듯한 덩리쥔의 음성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였다. 중화권과 동남아시아 정서가 잘 녹아있다.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은 어디서나 통하는 상상이다. 그녀는 언어 장벽을 넘어 인도네시아어로 음반을 내기도 했다.

덩리쥔은 아시아 대표가수로 기억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동시대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연예인이기에 앞서 인간적으로 특별한 매력을 평가하는 팬들도 많다. 배려하는 삶의 자세 때문이다. 그녀는 가난한 아이들, 전선의 군인들, 세상의 그늘에 던져진 이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었다.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드문 일이다. 유명해지면 교만해지는 게 세상의 인심이다. 그녀를 향한 갈채가 오래 지속되는 이유다.

태국 북부 치앙마이 매핑 호텔은 아직도 성업 중이었다. 임페리얼에서 인터콘티넨탈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지나온 역사는 그대로 안고 있었다. 덩리쥔이 이승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곳이다. 그녀는 객실에서 천식이 발작해 숨을 거뒀다. 타이완보다 공기가 좋은 곳으로 요양 왔던 시간은 마지막이 되었다. 동행했던 남자친구(사진예술가)가 외출한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한때 그녀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가사를 외우던 나는 오래전부터 이곳이 궁금했다.
 

▲태국 치앙마이 매핑호텔에서
▲태국 치앙마이 매핑호텔에서

매핑 호텔에는 아직도 덩리쥔의 대표곡들이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호평을 받았던 명곡 '예라이썅(야래향)' 이 낮은 연주음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로비에는 전성기 그녀의 사진이 세워져 있고 '덩리쥔 에프터눈 티' 코스가 마련되어 눈길을 끌었다. 아시아 최고 가인이 숨을 거둔 호텔은 아직도 정중한 추모의 예를 갖추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녀의 유해는 특별기편으로 운구 되어 타이페이에서 성대한 장례식으로 엄수되었다. 무덤이 조성된 타이완 진바오산(金寶山) 중턱에는 아직도 수많은 팬들이 찾아온다. 저 하늘로 떠나버린 그녀가 외롭지 않도록 제단에는 사계절 장미가 끓이지 않는다. 50평 묘지를 1원에 기부한 땅 주인은 생전의 착한 덩리쥔 성품을 닮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사랑은 설명이 필요 없다. '덩리쥔 기념공원' 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아름다운 인연들이다.

묘지 뒤로 진바오산이 둘러서 있고 앞으로는 조각공원과 측면 대나무 숲 사이로 멀리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묘역에는 언제나 노래가 흐른다. 중화권을 움직이는 낮의 주인공은 라오덩(老登. 등소평), 밤의 주인공은 샤오덩(小登. 등려군) 이라는 비유가 어울리는 시대였다.

치앙마이의 하늘은 맑았다. 지구 북쪽 일대가 겨울추위에 갇혀있을 때 이곳은 적당한 기온이 유지되는 선선한 가을 날씨다. 공해 없이 고산지대에서 만들어지는 천혜의 공기가 최고의 매력이다. 유럽과 아시아에서 꾸준히 인파가 몰리는 이유다. 도이 수텝 등 수많은 불교사원은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치앙마이의 자랑이다. 중국과 미얀마, 태국을 국경으로 형성되는 트라이앵글 지역의 깊은 숲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
 

▲치앙마이 시가지 전경
▲치앙마이 시가지 전경

덩리쥔은 치앙마이의 순박한 인심을 좋아했다. 태국의 두 번째 도시지만 이곳에는 무거운 경제적 시설이 별로 없다. 높은 빌딩도 드물고 소비지수가 낮은 편이다. 지나친 화려함이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복잡함을 찾기 힘들다. 관광 때문에 생겨난 유흥시설도 거의 없다. 나무와 꽃들이 무성한 원시의 자연만을 간직한 곳이다. 타이완과 기후가 비슷하고 과일과 채소가 풍부하다. 습기가 적어 쾌적한 공기는 천식을 않던 그녀에게 최고의 휴양지였다.

시내 중심가 '입만 해민'에서 며칠 동안 밤마다 덩리쥔의 히트곡들을 들을 수 있었다. 무명가수들이 부르는 거리의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거나 둘러서서 임시 콘서트장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오래 전 이승을 떠난 '노래의 천사' 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그리움이 가득하다.

그녀는 안면의 작은 점 하나도 없애려 하지 않았다. 얼굴의 단점이 내면의 아름다움을 오히려 돋보이게 한다는 생각이었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다. 가족들은 중국대륙에서 타이완으로 밀려온 외성인이었다. 이들의 초기 삶은 고달팠다. 전쟁과 지독한 가난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덩리쥔은 어렸을 때 모친을 따라 성당에 다녔고 '테레사' 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유명해지고 나서 일본을 주름잡는 톱 가수가 되었을 때 이름이 '테레사 덴' 이다. '츠구나이(속죄)' 같은 명곡은 일본 열도를 흥분시켰다. 낯선 대만인이 가수왕을 수차례 석권하고 명예와 부를 얻게 해준 이름이었다. 그녀를 통하지 않고는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이제는 먼 추억이 되었다.
 

▲덩리쥔의 전성기 모습
▲덩리쥔의 전성기 모습

말레이시아 설탕재벌 궈쿵청 과 결혼준비까지 했다가 끝난 이별로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숱한 스캔들이 따라 다녔다. 스타가 감내해야 할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을 것이다. 유난히 상처 난 기억들이 많았던 장본인이었다. 홍콩 스탠리의 덩리쥔 집은 유품들이 정리된 뒤 일반에 공개되었다. 마지막 앨범 '왕뿌랴오((忘不了. 잊을 수 없어)'가 함께 전시중이다. 어떤 기억들을 잊을 수 없었는지 그녀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 허공을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유명인이었던 1980년대 초 타이페이 북부 후이모 촌에 공연을 갔었다.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마음이 아파 상수도 사업에 써달라고 즉석에서 16만 타이완 달러(600만원)를 기부했다. 고아원과 군부대는 해마다 위문공연의 단골 코스였다. 여러 명의 입양아를 키우면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으로 쉴 새 없이 자선공연을 다녔다. 스타이기 이전에 마음을 함께 나누는 이웃 같은 따뜻함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치앙마이에서의 죽음 뒤 알려진 덩리쥔의 미발표 곡 가사는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과거는 떠올리기 힘들고 세상사는 예상하기 어려워.
 춤과 노래가 끝나면 구름이 되어 날아가리.
 길이 비록 험해도 갈고 닦는 고생스러움은 두렵지 않네.
 삶이란 아픔도 기쁨도 경험해야 하는 것"

제목(느린 인생의 길. 漫步人生路)에 담긴 정서처럼 그녀만의 정서를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테레사 덴으로 활동했던 일본에서의 공연 모습
▲테레사 덴으로 활동했던 일본에서의 공연 모습

홍콩무대에서 성공을 거둔 덩리쥔의 일본시절은 화려했다. 그녀의 마음 같은 노래 '공항(空港)'은 애호가들이 가장 아끼는 곡이다. 처연하고 성숙한 느낌이 깊이 있게 베어든다. 진출 첫해(1973) 후지TV 가수상을 시작으로 2년 만에 NHK 연말 대상을 차지했다. 말과 음식이 통하지 않는 도쿄에서의 성공이었다. 첨밀밀,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해요, 츠구나이(속죄), 야래향 등 주옥같은 곡들로 엔터테인 시장을 석권했다.

라스베가스 진출까지 생전에 만든 앨범은 100장이 넘는다. 중국 문화대혁명과 아시아 성장기의 곳곳에 덩리쥔의 노래가 스며있다. 평론가들은 덩의 노래가 맞춤 옷 같다고 표현한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는 의미다. 노래와 함께 허위와 가식이 없는 따뜻한 사랑을 행동으로 베풀었던 결과다.

인생은 공작과 까마귀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공작은 아름다운 깃털 때문에 평생을 동물원에 갇혀 지내야 한다. 까마귀는 그 공작이 부러워 견딜 수가 없다. 공작은 자유롭게 세상을 주유하는 까마귀를 부러워 하다가 죽는다. 풍차처럼 돌고 돌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은 인생의 작은 소망들을 막상 세상은 잘 허락하지 않는다. 각자의 운명대로 살다가 뒷모습을 남기는 것이다.

타이완의 인기 소설가 바이센융(白先勇. 1937- )의 '적선기' 에 인용되어 유명해진 쑤만수(蘇曼殊. 청나라 말기 방랑시인)의 시(詩) 한수가 애잔함을 달래주는 치앙마이의 밤이다. 너무 이른 나이에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가수 덩리쥔을 연상하게 하는 시어들이다.

"세상의 꽃들은 무척 급하다.
 봄이 끝나기도 전에 꽃이 진다.
 신선이 잠시 세상에 왔다 간 것이니
 아름다운 얼굴을 기억하며 슬퍼할 필요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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