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슈머타임스=안솔지 기자 | 최근 들어 밥상 위에 '당혹스러움'이 반찬으로 올라오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햄버거를 주문했더니 양상추가 아니라 양배추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가 하면, 을지로의 한 식당에선 '배추' 김치 대신 '양배추' 김치가 식탁에 올랐다.
양상추를 대신한 양배추는 특유의 단맛 때문인지 햄버거와 잘 어우러지지 않았다. 차라리 넣지를 말지 괜히 햄버거 맛만 버린 느낌이다.
양배추 김치는 어떻고. 한국인들은 '김치의 민족'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다양한 식재료로 김치를 담가 먹는다지만, 한식이 메인인 식당에서 양배추 김치가 배추김치를 대신한 것을 보니 낯설기 그지없었다.
잇따른 '양배추의 습격'은 '이상기후'가 원인이었다.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후가 여러 채소의 생육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채소 수급 불안정 문제가 밥상에 '대혼돈'을 가져오고 있는 셈이다.
특히 20도 안팎의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배추의 생육 부진은 치명적이었다. 김장철을 앞두고 있는 지금 배추 가격이 급등하면서 양배추나 양상추 등 대체재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로 인해 대체재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채소 수급 불안정 문제는 비단 배추나 양상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토마토 수급 불안정'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올 여름 기록적인 폭염 탓에 토마토 생육 역시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마토 과실은 낮 22~25도, 밤 15~18도에서 잘 자라는데 30도 이상 고온에서는 바이러스병을 유발한다. 올여름(6~8월)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는 20.2일로 역대 최장이었다.
토마토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면서 결국엔 '토마토 없는 햄버거'와 '토마토 개수가 줄어든 샌드위치'까지 등장했다. 한 베이커리 업체는 토마토의 가맹점 공급가를 올리는가 하면, 주문량도 제한하고 나선 상황이다.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이 어느새 '식량위기'는 우리 식탁을 점령해 버렸다.
이상기후에 따른 식량위기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다. 미래 기후 변화에 맞춰 새로운 농산물 재배방식을 찾기 위한 중장기적인 투자와 연구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가장 민감해야 할 농림축산식품부는 문제의식조차 가지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국정감사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농식품부가 농작물 기후 변화와 관련해 진행한 연구용역은 단 1건에 불과했다.
배추 수급난에 정부가 내놓은 대처도 할 말을 잃게 한다. 부랴부랴 중국산 배추를 들여오더니 배추 대신 양배추로 김장을 하란다. 정부 차원의 대책이라기엔 아마추어 수준이다.
당장 눈앞에 문제만 해결하기에 급급해 '식량위기'를 이겨낼 '골든타임'을 놓칠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