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슈머타임스=안솔지 기자 | "이 더운 날에 몇백명이 지금 와 있는데 양심적으로 피해자 목소리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야죠, 이거 다 계획된 범죄라는 얘기도 나오는 판인데... 큐텐 대표도 한국 왔으면 나와서 말을 해야죠 숨으면 됩니까?"
지난달 25일 티몬과 위메프 본사 앞을 점거한 피해자들의 분노는 33도를 웃도는 찜통더위도 이기지 못했다. 피해자 대부분이 휴가철을 맞아 가족과 친구 등 지인들과 함께 여행을 계획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웃으며 여행지로 떠나는 비행기 대신, 티몬·위메프 건물 앞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분노를 토해냈다.
새벽 기차를 타고 지방에서 서울로 사람들을 몰려들게끔 만든 장본인인 구영배 큐텐그룹 대표는 무려 22일이 지나서야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30일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참석한 구 대표는 사뭇 진중한 얼굴로 "죄송하다, 사죄드린다"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못내 이 자리에 끌려나온 듯 진심은 느낄 수 없었다.
구 대표는 '티몬·위메프의 대규모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이하 티메프 사태)가 벌어진 것을 두고 진심으로 억울해하는 듯 했다. 이는 국회 정무위 질의에서 "6개월만 주면 100% 피해 복구하겠다"는 발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최소 20년 동안 이커머스 업종에 종사하며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며 '과신'하는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 대표는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2003년 G마켓을 설립하며 '오픈마켓'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G마켓은 2005년 연간 거래액 1조원 돌파에 이어 2006년 나스닥 상장, 2007년 연간 거래액 3조원 돌파 등 무서운 기세로 성장했다.
구 대표는 2009년 글로벌 플랫폼 '이베이'에 G마켓을 매각하고 '큐텐'을 창업했다. G마켓을 성공시켰던 자신의 '성공방정식'을 활용해 새로운 '글로벌 이커머스 플랫폼 구축'을 꿈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와 지금의 시장 환경은 너무나 다르다. 이커머스 업계는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시장이다. 지금은 G마켓 설립 당시로부터 20여년이 지나 '강산이 두 번은 바뀐 시점'이다. 시장 주도권은 '쿠팡'이라는 새로운 강자가 쥐고 있고, '알리' 등 C커머스 플랫폼까지 플레이어로 참전하는 등 경쟁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결국 구 대표가 자신의 성공방정식을 믿고 이미 낡은 경영 방식을 고수한 결과가 '티메프 사태' 아닌가. 티메프 사태 초기 회사 측에서는 '일시적인 시스템 오류'라는 입장문을 내며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했다. 지금 이렇게 눈덩이처럼 피해가 늘어난 것은 '일시적인 오류로 시간을 벌고 자신이 해왔던 대로만 하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구 대표의 '오판' 때문이다.
그럼에도 구 대표는 여전히 "시간만 주면 100% 피해 복구, 사업 정상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듯 보인다. 국회에서도 "여기 있는 사람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거짓 해명을 늘어놓고, 제대로 된 해결책 하나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을 그 누가 신뢰할 수 있겠나.
그가 수십년간 이커머스 업종에 종사해온 전문가이자 한 기업을 이끌어온 대표라면, 이번 사태의 진정한 수습을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언론의 부정적 보도로 인한 셀러의 이탈, 시장 격화에 따른 프로모션 비용으로 인한 손실. 이러한 것들이 정말 티메프 사태의 원인일까.
티메프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난 지 한 달이 다 되간다. 과거의 성공만을 내세우며 믿어달라기엔 너무 먼 길을 왔다. 수 조원을 잃은 피해자들을 위해 '마땅히 책임질 위치에 있는 자'에 걸맞은 행동과 결정을 보여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