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슈머타임스=안솔지 기자 | '해외직구 금지령'으로 소비자들을 분노하게 했던 정부가 발표 사흘 만에 결국 한 발 물러섰다. 당초 80개 품목에 한해 'KC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직구를 금지하기로 했으나,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만 반입을 제한하는 것으로 선회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16일 KC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의 해외직구를 차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알리익스프레스·테무 등 C커머스 플랫폼(중국 온라인쇼핑 플랫폼)의 국내 시장 침투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소비자 안전 강화의 필요성에 따른 조치라는 설명이다. 최근 C커머스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제품에서 국내 기준치를 초과하는 유해 물질이 잇따라 검출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자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해당 조치 발표 직후 소비자들은 '소비자 개인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규제한다'며 거센 분노를 토해냈다.
실제로 정부가 발표한 해외직구 금지 품목을 보면 '안전성' 논란이 불거졌던 어린이용품 뿐만 아니라 전기·생활용품, 생활화학제품 등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하던 품목들이 다수 포함됐다.
당장 유아차 등 유아용품을 해외직구로 구매했던 온라인 맘카페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배터리, 충전기를 비롯해 컴퓨터 주변기기 등 일상 전자제품을 해외직구로 저렴하게 구매해온 IT기기 애호가들, 피규어·프라모델·인형 등을 즐겨 구매하는 '키덜트족'(어린이 감성을 즐기는 어른)들도 높은 수위의 비판을 쏟아냈다.
KC인증의 효용성과 신뢰성에 대한 지적도 잇따랐다. KC인증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 사실상 '내수용 인증'이다. KC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통상 2년7개월이 걸리고 연간 1546만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오로지 국내 판매를 위해 KC인증을 받는 번거로움과 비용을 감수할 기업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KC인증을 받더라도 안전성이 담보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 아기 욕조'로 불렸던 제품도 KC인증을 받았으나, 지난 2020년 기준치 600배 이상의 유해 물질이 검출돼 논란이 됐다.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제품 중에도 KC인증을 받은 제품이 있었다.
정부가 내세운 '소비자 안전 강화'라는 대전제에는 동의한다. C커머스 플랫폼이 급격히 성장하는 가운데 판매되는 제품에서 유해 물질이 검출되고, 가품이 버젓이 판매되고, 개인정보가 침해되는 등 그간 국내 소비자들의 권리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너무나 성급했다. 발표 후 사흘 만에 여론에 못 이겨 입장을 번복했다는 것도, 기존 방안에 충분한 고민을 담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결국 정부의 미숙한 대처가 업계 관계자와 소비자 모두 혼란에 빠뜨린 셈이 됐다.
한번 넘어졌으니, 이번엔 실수하지 않도록 천천히 가면 된다. 앞서 정부는 C커머스 플랫폼 업체와 '자율 제품안전협약'도 맺었다. 이에 따른 플랫폼 사업자들의 제품안전 강화 행보를 지켜보며,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고 정부 조치가 필요한 부분은 없는지 등을 충분히 고려해 대처해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