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보험금 판결 두고 금융당국-생보사 '온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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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보험금 판결 두고 금융당국-생보사 '온도 차'
  • 이화연 기자 hylee@cstimes.com
  • 기사출고 2016년 10월 04일 0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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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소비자와 약속 지켜야" vs. 생보사 "추후 입장 정리"
   
 

[컨슈머타임스 이화연 기자] 소멸시효가 경과된 자살보험금은 지급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금융당국과 생명보험사가 극명한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

현재 28건의 관련 소송이 남아있는 상태. 이번 판결이 향후 '판단 지표'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금융당국이 "자살보험금 지급은 소비자와의 약속"이라며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적잖은 파장이 예고된다.

◆ '소멸시효 경과' 쟁점…미지급 1500억원 '공중분해'?

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자살보험금 지급 논란은 지난 2001년부터 2010년까지 생명보험사들이 판매한 '재해특약'에 기인한다.

당시 약관은 "가입 2년 후에는 자살 시에도 특약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생보사들은 자살은 재해가 아니라는 이유 등을 들며 자살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지난 5월 약관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면서 생보사들은 2000억원대 지급 의무를 지게 됐다.

보험사들은 "이미 2년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수익자를 상대로 소송을 불사했고, 이에 따른 첫 판결이 이날 나왔다.

대법원은 교보생명이 가입자 A씨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상고심에서 "A씨의 자살보험금 청구권은 소멸시효 기간이 완성돼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지난 2004년 A씨가 자살하자 부인 B씨는 2004년 일반사망보험금 5000만원을 수령했다. B씨는 추후 재해특약 가입 사실을 인지, 2014년 이를 청구했다.

보험사는 소멸시효 2년이 지나 청구권은 이미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A씨는 자살보험금 지급의무가 있는 보험사가 자신을 속였기 때문에 청구권은 유효하다고 맞섰다.

1∙2심은 "보험사가 A씨를 속였다는 증거가 없고, 보험사가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것이 권리남용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이에 동의했다.

미지급 액수만 1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이번 판결에 따른 소비자들의 우려도 불어나고 있다.

업계 '빅3'인 삼성생명(607억원)과 한화생명(97억원), 교보생명(265억원)은 "대법원 판결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자세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미지급 액수가 815억원으로 가장 많은 ING생명을 비롯해 신한생명(99억원), 메트라이프생명(79억원), PCA생명(39억원) 등 7곳만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지급을 결정했다.

판결을 두고 대형 생명보험사들은 안도하는 분위기지만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 관계자는 "판결문이 도착하는 데 1~2주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어떻게 방향을 잡을지 정해진 것이 없다"며 "세부적인 내용이 파악되는 때 입장이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자살보험금 지급은 소비자와의 약속"이라며 강경 태세를 고수하고 있다.

해당 보험사에 대한 과징금과 임직원 제재 등이 전망돼 당국과 보험사 간 '3라운드'가 예고된다.

앞서 금감원은 삼성·교보생명에 대한 현장검사를 마쳤다. 현재 한화·알리안츠·동부생명에 대한 현장검사를 진행 중이다.

◆ "일반∙재해사망금 분리 '부당'…소멸시효 안내했어야"

이번 판결로 소비자 권익보호가 한 발 후퇴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소멸시효'가 존재한다는 것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보험사의 책임이 분명하다는 이유에서다.

금융소비자원 오세헌 국장은 "전 세계 어느 보험사도 생명보험 가입자가 사망했을 때 일반사망보험금과 재해사망보험금을 따로 청구하게 하지 않는다"며 "수익자가 일반사망보험금을 청구했을 때 재해사망보험금도 같이 지급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말했다.

청구권 소멸시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안내하지 않은 책임도 빗겨갈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오 국장은 "현행 소멸시효 약관 자체가 일반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어렵다"며 "일반인 눈높이에 맞게 약관을 고치던가 소멸시효가 무엇인지 더 자세하게 설명을 달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판결은 보험사들에게 '면피 거리'나 다름 없다"며 "향후 남아 있는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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