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부(副)'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올 연말 국내 주요 대기업 인사에서는 '부'자가 붙은 직함에 힘이 실리는 경영 구도가 펼쳐졌다.
'부'자를 단 그룹 오너(창업주)의 2ㆍ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면서 '실세'로 자리 잡는 한편 경영 능력도 검증받고 있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아 경영 전반을 관여하게 됐다.
그야말로 '부'자에 힘이 잔뜩 실린 형국이다.
삼성 안팎에서는 COO인 이 부사장이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오른 윤주화 사장(경영지원실장), 전략기획, 사업조정 등의 중책을 수행할 이상훈 사장(사업지원팀장)의 뒷받침 속에 단독 최고경영자(CEO)인 최지성 사장과 함께 회사의 핵심적인 정책을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함께 승진한 김순택 삼성전자 부회장도 '부'자의 힘을 더하는 사례다.
삼성SDI 사장을 10년이나 지낸 김 부회장은 승진과 함께 사실상 그룹 전체의 미래 `먹을거리'를 만드는 일을 책임졌다. 그는 형식상으로만 삼성전자에 속한 별동대 격인 '신사업추진단'을 맡았다.
올해 대기업 오너가(家) 성원 중에서 `부족' 대열에 가장 먼저 합류한 인물은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아들인 정 부회장은 지난 8월 기아차 사장에서 현대차 기획 및 영업담당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했다.
현대차와 기아차를 합쳐 6명뿐이었던 부회장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그룹 경영의 최일선에 섰다.
디자인 경영을 표방하며 경쟁력 있는 신차들을 잇따라 출시했던 기아차는 지난해 25%였던 국내 시장 점유율이 올해 상반기에는 31%로 상승했다.
작년과 비교할 때 올 1∼6월 기아차의 영업이익은 91.5% 뛴 4천192억원을 기록했고 당기순이익은 무려 6배 이상 늘어난 4천445억원에 달했다.
이 같은 성과는 `개연성이 있는 수준'에서 수차례 점쳐졌던 정 부회장의 승진이 현실화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정 부회장이 머지않아 그룹 경영을 총괄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20일 "정 부회장이 39살의 나이로 부회장 대열에 합류한 것은 그룹 내 경영진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며 "자동차 업계의 판도가 급변하는 상황인 만큼 현대.기아차도 새로운 진용을 갖춰 변화에 대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최근 인사에서 ㈜신세계의 총괄대표로 선임되면서 공식적인 경영권을 손에 쥐게 됐다.
정 부회장은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단 것은 2006년부터였지만, 그동안 특별히 맡은 직책 없이 전문경영인인 구학서 부회장의 어깨너머로 경영 경험을 쌓아왔다.
그러나 이번에 총괄대표 자리에 오르면서 이명희 회장의 뒤를 이어 그룹의 오너이자 최고경영자로서 모든 권한을 갖고 그룹을 진두지휘하게 됐다.
롯데그룹은 1세대 오너인 신격호 회장의 뒤를 이어 아들인 신동빈(54) 부회장이 일찍이 후계자로 낙점돼 그룹 경영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신 회장은 여전히 한국과 일본을 격월로 오가며 사업 현황을 보고받고 관련 지침을 내리고 있지만, 신 부회장이 2004년 10월 롯데 정책본부 본부장에 취임한 이후 주요 사업들은 모두 그의 손을 거친다.
최근 '10년 대계' 차원에서 만든 `2018 비전'도 그가 주도적으로 만든 것이며, 적극적인 국외사업 진출이나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따른 금융업 강화 등도 모두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신 부회장은 2001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고, 작년에는 아시아소사이어티 코리아센터 회장, 올해 들어서는 한국방문의해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아 활발한 대외활동도 하고 있다.
오너 일가는 아니지만, LG그룹에서도 `부'의 명성은 이어지고 있다.
지난 3년간 LG전자를 이끌어오면서 올해 1조원대 이익을 가져온 주인공인 남용 LG전자 부회장이 유임됐다.
재계와 증권가에서 한동안 교체설이 나돌았던 남 부회장이 변화보다 안정을 택한 그룹의 기조에 따라 유임되면서 한동안 사내에 무게감도 더할 것으로 점쳐진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