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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좀 읽어보세요. 이런 나쁜 기업들이 우리나라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니까요 글쎄……"
택시기사 A씨는 신호에 걸린 틈을 타 기자에게 정체불명의 전단지를 건네며 말했다. 탑승한지 5분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캐논, 유니클로, 닌텐도 등 국내에서 영업중인 일본계 기업들의 이름이 가득했다. '다케시마 후원기업 명단'이라는 큼지막한 제목은 문건의 의도를 그대로 투영했다.
"법대 다니는 우리 아들이 인쇄해준 건데, 불매운동을 해서라도 이놈들은 우리 나라에서 쫓아내야 해. 독도가 자기네 땅이야? 손님, 안 그래요?"
60대 전후로 추정되는 룸미러 속 A씨의 얼굴엔 어느새 미간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종잇값이 얼마가 들더라도 손님들에게 진실을 알리겠다며 의지를 다잡았다. 이미 뜬소문으로 확인된 사실임을 모르는 듯 A씨의 반일감정은 기자가 목적지에 다다르는 내내 거칠게 표출됐다.
올해 초 온라인상에 떠돌던 정체불명의 '다케시마 후원기업 명단'이 여전히 유령처럼 사회 곳곳을 배회하고 있는 진풍경이었다.
사실확인이 되지 않은 악성 루머에 기업들이 고충을 토로하는 해프닝이 반복되고 있다.
당장 지난 25일 키움증권은 현대증권이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해 시장을 발칵 뒤집었다.
'정부가 대기업에 대한 적극적인 구조조정 유도 정책을 추진할 경우 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가능성을 또 다른 가능성으로 갈무리한 '악성루머' 수준의 분석이었다.
현대증권은 즉각 반발, 키움증권 측의 사과를 받아내긴 했으나 공교롭게도 이날 현대증권 주가는 6.47%나 곤두박질쳤다.
소셜커머스 티몬은 지난 7월 본사인 리빙소셜의 매각 추진설과 핵심인력 이탈설에 몸살을 앓았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떠돌던 자금난 소문이 몸집을 키운 결과였다.
10월 현재 티몬은 서울 강남 삼성동에 사옥을 새로 짓고 업계 수위를 향한 발걸음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 유동성 문제도 상당부분 해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분유 속에서 개구리가 나왔다는 일명 '개구리 분유'사건에 남양유업의 8월은 어두웠다. 결과적으로 단순 해프닝으로 마무리 됐지만 분유 판매량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이 힘을 받고 있다.
사실확인이 생략된 채 유통된 허위정보가 낳은 폐해들이다.
문제는 도미노식 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불안감은 종사자들의 불안감과 직결된다. 누군가가 하루아침에 직업을 잃을 수도, 행복했던 가정에 웃음기가 송두리째 사라질 수도 있다는 얘기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기업의 신인도가 크게 훼손되면서 글로벌 경쟁력 자체를 좀먹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루머 대상으로 떠오른 기업의 규모에 따라 국가 경제도 뒤흔들 수 있다.
"로레알이 10여년 전에 인수했고 본사는 프랑스에 있다. 일본과 관련이 없다." (슈에무라 관계자)
"우린 미국 P&G 소속 브랜드다. 일본 우익단체 후원설은 허위다." (SK-ll 관계자)
'다케시마 후원기업 명단'에 포함돼 여전히 고초를 겪고 있는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뛰고 있는 국내 기업들 역시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전례라 마음 한 켠이 서늘하다.
택시기사 A씨 자신은 물론 주변인들의 확인된 정보 유통 노력이 지금 당장은 물론 앞으로도 절실하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