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에너지 의무화' 임박…건설사 원가율 관리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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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에너지 의무화' 임박…건설사 원가율 관리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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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김동현 기자 | 오는 6월부터 민간 건축물에 대한 제로에너지 의무화가 시행되면서 건설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원자재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치솟은 원가율로 고민하던 건설사들은 제로에너지 의무화 시행으로 공사비 추가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살펴보면 1분기 주요 상장 건설사들의 원가율은 93%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말과 비슷한 수치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건설사들이 원가율 관리에 고전하고 있음을 뜻한다.

통상 건설업계에선 원가율이 90%를 넘어설 경우 수익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데 이를 훌쩍 뛰어넘은 셈이다.

이처럼 높은 원가율의 주된 원인은 원자재가격과 인건비의 급등에 따른 것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통계를 보면 2020년 100이었던 공사비지수는 2021년 117.37, 2022년 125.33으로 꾸준히 상승한 후 지난해 9월 130.45로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더 큰 문제는 공사비용 상승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모른다는 것이다. 가파른 공사비 상승에 따른 건설사와 재건축 조합 간의 분쟁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정비사업은 공사비 갈등으로 약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다. 당초 지난해 분양에 나섰어야 할 이 단지는 시공사와 조합 간 공사비 갈등으로 인해 공사 중단까지 겪은 바 있다. 결국 3월 기존 5800억원에서 8366억원으로 44% 인상된 금액으로 합의안을 마련하면서 비로소 분양에 나서게 됐다.

이 외에도 공사비 관련 갈등으로 서울시의 중재를 받는 재건축 단지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원가율 상승까지 이어지면서 건설사들이 재건축과 재개발 등 정비사업 수주를 꺼리고 있는 추세다.

실제 강남권 대어로 평가받는 잠실우성 1·2·3차 아파트 시공사 입찰에서 GS건설만 참여했고, 개포 주공 6·7단지도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재입찰을 마감한 결과 현대건설이 단독 입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과거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이 '흥행보증수표'로 불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인 상황이다. 공사를 해도 남는 것이 없어지면서 건설사들이 수주경쟁을 꺼리는 것도 반영된 결과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 원가율이 오르면서 건설사들이 집을 지어도 남는게 없는 구조가 됐다"며 "게다가 미분양으로 제때 수익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고스란히 손실로 돌아오는 탓에 위험부담도 높아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건설사들이 원가율 관리에 애를 먹는 가운데 정부가 제로건축물 의무화를 밀어붙이면서 기업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제도는 1000㎡ 이상 민간 건축물과 30세대 이상 민간 공동주택에 ZEB 5등급 수준 설계를 의무화하기 위해 다음달 30일 시행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당초 정부는 이 제도를 작년 초 시행하려 했으나 원자잿값·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가 오르면서 올해 6월로 1년6개월여 미룬 바 있다.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까지 더해지면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업계 의견을 반영한 조치다.

제로에너지건축물은 건물이 소비하는 에너지와 생산하는 에너지를 합쳐 에너지 사용량이 '제로'(0)가 되는 건축물을 지향하기 위한 제도다. 에너지 자립률에 따라 1등급(100% 이상)에서 5등급(20∼40% 미만)으로 등급을 나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짓는 공공주택에 대해선 2023년부터 ZEB 5등급 인증이 의무화돼 있다.

민간 아파트에는 5등급의 80∼90% 수준으로 완화된 기준이 적용되지만, 건설사 입장에선 고성능 단열재와 친환경 재료 등의 사용량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결국 추가 비용 발생이 불가피하다.

정부도 5등급 수준을 충족하려면 주택 건설비용이 가구당 약 130만 원(84㎡ 기준) 가량 높아질 것으로 추정하면서 사실상 원가율 인상이 불가피함을 시사했다.

업계에서는 현재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된 시점에서 경기 부양 대신 규제에 가까운 제도 도입이 과연 시기적절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원가율로는 사업을 해도 사실상 손해가 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인데, 제로건축물의무화가 시행될 경우 과연 적극적으로 시공에 나설 회사가 있을 지 의문"이라며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를 위한 방안을 마련한다고는 하지만 그와는 어찌보면 정반대되는 부작용이 날 수 있는 제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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