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슈머타임스=곽민구 기자 | 삼성전자가 엔비디아로부터 "자사에 납품할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양 사 간 거리가 또 다시 멀어지게 됐다.
반면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개발 속도를 소폭 넘어서면서 '엔비디아로의 독점 납품' 굳히기에 들어가 양 사 간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는 분위기다.
젠슨 황 CEO는 지난 7일(현지시각)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가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루 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이 HBM을 공급할 것이란 사실은 내일이 수요일이라는 말처럼 확신한다"라며 "원래 엔비디아가 사용한 첫 HBM 메모리는 삼성이 만든 것이었다. 그들은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은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하고(they have to engineer a new design), 할 수 있다"라며 "그들은 매우 빠르게 일하고 있고 매우 헌신적"이라고 강조했다.
젠슨 황 CEO의 해당 발언은 '삼성전자가 HBM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삼성전자의 'HBM3E'가 아직 엔비디아의 '퀄(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언급하면서 동시에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그가 삼성전자 HBM의 성공을 예상했지만,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은 엔비디아의 요구 조건을 충족하고 최종 납품까지 이어지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제품을 새롭게 설계하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한다. 업계 관계자는 "설계를 변경하는 것은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라며 "역량이 있더라도 향후 소모될 시간 등 위험성이 크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HBM이 2025년에도 순항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승훈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25년은 글로벌 시장에서 AI(인공지능) 반도체 산업이 본격적으로 커지는 시기"라며 "HBM 수요가 넘쳐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HBM 경쟁에서 밀리며 크게 부진했다. 도약을 위해서는 HBM에서 경쟁력을 회복해야 하지만, 이번 'CES 2025'를 통해 엔비디아와의 거리가 조금 더 멀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 멀어진 사이 SK하이닉스는 반대로 엔비디아와 더 가까워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8일(현지시각) 'CES 2025' SK 전시관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그간 SK하이닉스의 개발 속도가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개발 속도보다 조금 뒤처졌으나, 최근에는 엔비디아를 조금 넘어섰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약간의 역전 형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라며 "언제 가서 뒤집힐지 모르지만 '헤드 투 헤드'로 서로 개발 속도를 더 빨리 하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이 HBM에 나온 전체 얘기"라고 덧붙였다.
즉, 최 회장의 이 같은 발언은 SK하이닉스의 제품 개발 능력이 상당히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23조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공지능(AI)이 확대됨에 따라 'AI 칩'에 탑재되는 HBM 수요가 급증했으며, 세계 AI 반도체 시장의 약 90%를 점유한 엔비디아로의 납품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SK하이닉스가 HBM의 수혜를 입었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가 요구하는 개발 속도를 소폭 넘어서면서 향후 시장 지배력을 키웠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이번 CES를 통해 엔비디아와의 관계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라며 "올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지난해와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