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타임스 김한나 기자] 전화사기(보이스피싱)의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지만 예방책은 미흡한 것으로 드러나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공동으로 운영중인 '수신자부담 전화 차단' 서비스가 사실상 '무용지물'인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에서 걸려오는 대부분의 보이스피싱이 활개를 치고 있어 추가대책마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제전화식별표시제' 역시 보이스피싱 업체들이 발신번호를 국내 일반전화 번호로 조작하는 수법으로 교묘히 빠져 나가고 있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는 물론 정부마저도 손을 놓은 실정이다.
◆ 수신자부담 차단서비스, 해외전화 차단 불가능
최근 한 택배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은 A씨.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광역시 지역번호인 051로 번호가 뜬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정상적인 일반 전화번호라 의심 없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는 A씨 앞으로 배송된 택배가 부재중이라 반송됐다는 내용이었다. 1분 정도 통화한 때쯤 옆에서 듣고 있던 직장 동료의 "뭔가 이상하니 빨리 끊으라"는 말에 통화를 종료한 A씨.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구서를 확인해보니 그 문제의 전화 내역은 '수신자부담요금'으로 청구돼 있었다.
통화료 역시 일단 통화료 보다 훨씬 비쌌다. 그제서야 자신이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에 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A씨는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코자 수신자부담 전화를 막아놨는데도 불구하고 청구된 '수신자부담요금'이 이해되질 않았다.
A씨는 "수신자부담 전화를 차단하기 위해 따로 신경 써서 수신자부담차단 서비스에 가입한 것인데 결론적으론 아이러니하게 수신자부담 전화의 사용료를 지불하게 됐다"며 "이렇게 허술하게 운영되면서 수신자부담전화가 차단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분개했다.
A씨가 이용한 수신자부담차단 서비스는 1644-1739로 연결해 신청하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는 수신자 부담 전화로 인해 오는 피해를 방지하고 보이스피싱을 예방하기 위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U+)등 이동통신사 3사를 비롯해 SK텔링크, SK브로드밴드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 연합서비스다.
본보 확인 결과, 이 서비스는 국내에서 걸려온 수신자부담 전화에 국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이 서비스를 가입할 때, 혹은 업체 홈페이지 등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내용이다. 수신자부담 전화 차단 서비스를 알리는 온∙오프라인 어디에서도 국내 수신자부담 전화만 차단된다는 정보는 없었다.
업계 측은 수신자부담 전화는 수신자의 의사결정이 우선되기 때문에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신자부담 전화 차단 서비스는 국내 발신된 전화 외에 해외에서 걸려온 수신자부담 전화는 차단하지 못한다"며 "그대신 해외에서 오는 전화의 경우, 방통위의 '국제전화식별표시' 지침에 따라 국제전화임을 밝히도록 돼 있고 수신자 부담 전화임을 통보 후 수신자 의사결정에 의해 전화를 받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의 사례처럼 사기업체들이 발신번호를 국내 번호로 조작하고 택배회사 등으로 교묘히 속여 통화를 연결하도록 하면 누구나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 유사피해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 통신업체∙방통위 "보이스피싱 수법 빠르게 진화, 예방 역부족" 한 목소리
이처럼 '날고 있는' 보이스피싱 업체들의 수법에 비해 피해를 막기 위한 이동통신사들과 정부의 예방책은 '기고 있는'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업체들이) 발신자 번호를 국내 사업자의 전화번호나 인터넷전화 등의 번호로 조작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도 발신자를 찾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며 "보이스피싱을 막기 위해 여러 통신 기술들을 연구하지만 최첨단으로 발전하고 있는 보이스피싱을 막기는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 놓았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도 볼 맨 소리부터 흘러나왔다.
한 방통위 관계자는 "(보이스피싱과 관련) 기술적인 부분으로 대응책을 내 놓으면 새로운 기술들이 발달되고 있다"며 "계속 진화하며 급변하는 기술에 사업자들이 따라가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인터넷을 이용해 이루어지는 보이스피싱 전화는 국제적인 교류도 힘들고 워낙 보이스피싱 업체들이 여러 나라를 거치는 루트를 통해 악의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막기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인터넷전화로 발신번호를 조작하면 누가 전화통화를 유발시켰는지 찾아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보이스피싱을 예방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이렇다 할 방안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며 "개개인들이 조심하는 게 가장 좋다"고 덧붙였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수신자부담전화를 악용해 수익을 올리려는 보이스피싱업체에 대한 정부 및 통신사업자들의 발 빠른 대응을 요구하는 반응이 새 나왔다.
직장인 김모씨는 "아무리 보이스피싱 수법들이 많이 알려졌다 하더라고 일단 당하게 되면 교묘한 수법에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특히 정보에 어두운 노인들은 뻔 한 수법에도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나 사업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대응책을 내 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