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 추리작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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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추리작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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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비 존스는 공을 티에 올려놓고 예행연습 삼아 짧게 휘둘러 본 다음,
천천히 클립을 뒤로 돌렸다가 번개같이 내려쳤다.


우리의 자유롭고 신의 있는 주인공 보비 존스는 가볍게 골프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잘못 맞은 공이 가파른 절벽 쪽으로 날아가고, 보비는 순간 어떤 이의 비명 소리를 들은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됩니다. 공을 찾으러 가보니, 놀랍게도 절벽 밑에는 어떤 남자가 쓰러져 있습니다. 그는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지만, 보비와 함께 골프를 치고 있던 의사는 그 남자가 곧 죽을 거라고 확신하며 사람을 부르러 가죠.

보비는 절벽 아래로 내려가 그 남자의 옆에 있어줍니다. 과연 의사의 말처럼, 남자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걸쳐 가쁜 숨을 몰아쉽니다. 그 순간, 남자의 눈이 거짓말처럼 부릅 떠지고, 마치 유언처럼 한 마디를 남기고 눈을 감습니다.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

이 이상하고 미스터리한 말이, 우리의 주인공 보비와 그의 친구이자 연인인 프랜티스를 험난하고 위험한 모험에 빠지게 만들죠. 애거서 크리스트의 소설은 주인공이 젊으면 젊을수록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겪는 사건이 헐리우드 영화처럼 박진감 넘치는 것 같아요. 이번 이야기도 제법 로맨스와 위험한 모험이 섞여 긴장감을 조성합니다……만, 역시나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였을까요, 마지막 부분은 정말이지 뜬금없기도 합니다. 게다가 "범인은 매력적인 사람이 많다."는 힌트를 꽤나 앞 쪽에서, 너무나 쉽게 던져주었기 때문에 "당연히 범인이 아닐 것 같은 용의자들"을 제외하고 나면 사실상 의심이 가는 사람은 한 사람 밖에 남지 않았던 거죠.

에번스의 비중도 의문입니다. 무슨 거창하고 대단한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크리스티 할머니는 그런 걸 노렸던 걸지도 몰라요.) 사람의 이름이라기 보다는 뭔가 특정한 무언가를 지칭하는 암호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에번스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는 "응?" 하고 반문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뭐, 이런 저런 불평을 늘어놓아도, 제가 항상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은 전부 읽어보는 게 목표라고 말하는 것에는 제 나름대로 그녀의 글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의미겠지요. 일단 독립성과 완성도 높은 이야기 구조가 좋고, 그 이야기를 재치 있고 흥미롭게 이끌어주는 캐릭터들의 성격이나 그들간의 대화도 좋아합니다.

계속 시리즈를 읽다 보면 항상 등장인물들은 외국에서 살다가 영국으로 온 지 얼마 안 됐고, 엄청난 유산을 비밀스럽게 상속 받았다거나 받을 예정이라든지, 해군 장교나 육군 장군뿐만이 아니라 소령, 중령, 대령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귀족이거나 귀족들과 어떤 연관이 있다거나 하죠. 다른 유럽 지역은 그나마 괜찮은데, 아메리카에서 온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묘사되기도 합니다. 엄연히 귀족과 서민의 계급이 존재하며, 애거서 크리스티 그녀 자체도 이 계급을 뛰어넘거나 무시하지 못해요. 철저하게 계급주의적이며, 1800년대 후반과 1900년대 초반의 영국의 묘사도 결국 그 시각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도… 뭐 언제나 책을 읽으면 결론은 재미있고, 또 다른 이야기를 읽고 싶어지게 되는 건 역시 그녀가 천부적인 이야기작가이기 때문인 듯 해요. 덕분에 소유흑향씨는 이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또 <파커 파인 사건집>이라는 그녀의 다른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중독이에요, 중독.  

 

출처: 소유흑향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dnjsgl3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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