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없는 행복한 '바가지 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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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 없는 행복한 '바가지 소비'
  • 김재훈 기자 press@cstimes.com
  • 기사출고 2016년 08월 10일 0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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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슈머] "행복에는 소득 이외의 것이 더 중요해진다"
   
 

#. 종로 광장시장, 동대문 경동시장 등 서울지역 재래시장을 종종 방문하는 직장인 안모(서울 성동구)씨는 가격을 깎는 법이 없다. 대형마트들이 주거지역 곳곳에 난립하면서 이곳 상인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는 인식에 따른 나름의 '베품' 행보다. 소소하게나마 시중 현금유동성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도 가볍다.

안 씨는 "대형마트와 품질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제품을 재래시장에서 다소 비싸게 구매한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한 적은 없다"며 "제품을 팔고 기뻐하는 상인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 한 켠이 가벼워진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단골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덤(공짜 상품)을 받는 즐거움이 생겼다"며 "소비에 따른 어떤 긍정적 효과가 발생되는지에 주목하면 소비행위 그 자체만으로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착한 소비' 문화 저변 넓어져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는 '짠' 소비풍토가 세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렇다 보니 품질보다는 가격 차별성에 주안점을 둔 기업들의 마케팅이 그 어느 때보다 열기를 더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온라인 마켓이다. G마켓, 옥션, 11번가, 쿠팡, 티몬 위메프 등으로 꾸려진 '범 온라인' 쇼핑몰 업체들이 대표적이다. 실시간 가격비교를 통해 소비자들을 자사 사이트로 유인한 뒤 추가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은 이미 이들 사이에 공식처럼 된 지 오래다.

소비자들 역시 큰 호응을 보내고 있다. 이들의 매출 총액은 지난해 기준 총 3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핵심은 '박리다매'. 단돈 100원이라도 저렴한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꿰뚫은 '출혈성 경쟁'도 마다하지 않은 데 따른 결과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 되고 있는 데 따른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런 가운데 일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착한 소비' 문화 역시 서서히 기세를 넓혀가고 있다. 개념 자체가 주관적이라 특정한 기준은 없다.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나쁜' 기준을 세워 그에 해당하는 기업과 고착화 된 시장풍토를 철저히 배격하려는 움직임이다.

앞서 언급한 안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접근 편의성과 평균 품질, 가격 등을 감안하면 대형마트가 재래시장에 비해 우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최소 수십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서민 친화적' 재래시장을 지키고 유지해야 한다는 대중적 여론을 행동으로 옮기는 나름의 실천이다.

강자(대형마트)들에 의해 약자(재래시장)들이 시장논리를 통해 유린당하고 있다는 판단이 그 중심에 있다. 자유시장 경제논리에서 한발 비켜서 있는 이타적 경제활동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먹거리 시장에서도 최근 두각을 보이고 있다.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전국 각 지역별 식음료 채널들이다.

제주도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한 두유제조 협동조합은 재고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고 한다.

가격은 공장에서 대규모로 제조되는 일반 시중 두유에 비해 약 2~3배 정도 비싸게 책정돼 있다. 스스로의 건강과 지역경제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다는 판단이 직접적 구매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제품을 홍보하는 온라인 홈페이지에는 구매자들의 호평이 줄을 잇고 있다.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단골'들을 확보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들에게 있어 가격은 제품 판단 기준의 맨 마지막으로 밀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가적으로 발생되는 비용지출 손해를 만족감으로 환산해 돌려받고 있는 것이어서 손실여부 자체가 무의미하다.

단순 '바가지'를 썼다고 보기에 어려운 그들만의 '바가지 소비' 풍경인 셈이다.

◆ "행복에는 소득 이외의 것이 더 중요해진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앞다퉈 육성·도입하고 있다.

강원도의 경우 7월8일부터 10일까지 '2016 사회적경제 주간기념 한마당행사'를 지난해에 이어 개최했다. '착한 소비, 따뜻한 나눔'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사회적기업의 날'(7월1일)과 '협동조합의 날'(7월2일)을 기념한 '사회적경제' 교류 확대가 취지다.

강원도에만 크고 작은 사회적경제 기업이 840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도 전국 기준 5번째 규모에 불과하다고 하니, 국내에서 관련 시장이 얼마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지 예단할 수 있다.

사회적경제 전문가인 이탈리아 룸사대 루이지노 브루니(Luigino Bruni) 교수는 "한국의 행복지수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며 "소득이 올라감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액수를 넘어서면 행복에는 소득 이외의 것이 더 중요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오늘날 자본주의가 직면한 도전"이라며 "한국은 전통적으로 나누는 개념이 있다"고 역설했다.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소비자 개개인의 '착한 소비'에 글로벌 경제 위기 탈출의 해법이 숨어있다는 조용하면서도 울림 있는 제언이 아닐까.

(이 글은 한국소비자원이 발간하는 월간 '소비자시대' 8월호에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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