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타임스 안은혜 기자] 통신사와 방송사 1위간의 만남으로 관련 업계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던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양사의 만남은 방송·통신산업에 큰 영향을 줄 대형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달 4일 공정거래위원회가 합병 심사보고서를 통해 '경쟁제한'을 이유로 주식 취득과 합병금지 명령을 내렸다. 공정위의 합병 '불허' 판정에 SK텔레콤은 "매우 충격적"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양사는 11일 오후 공정위 판정에 대해 "합병을 불허할 만큼 경쟁 제한성이 심하지 않다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와 함께, 합병 심리를 비공개로 진행해달라는 신청서도 함께 제출했다. 합병에서 불허 판정까지 8개월여의 일지를 정리했다.
◆ 당찬 '포부' 던졌으나 업계 반응 '싸늘'
SK텔레콤은 지난해 10월 30일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추진을 공론화했다. 11월 2일 이사회를 열고 CJ오쇼핑이 보유한 CJ헬로비전 지분 30%를 500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의했다.
그 해 12월 1일 SK텔레콤은 공정위와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에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정부 인가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다음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헬로비전 인수 후 5년 간 5조원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미디어 시장과 공생하겠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의 당찬 포부와는 달리 업계는 불쾌감과 부정적인 의견들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12월 18일 서울 종각역 '그랑서울'에서 열린 기자단 송년회에서 KT Mass총괄 임헌문 사장은 '자기도 속이고 남도 속인다'는 뜻의 사자성어 '자기기인(自欺欺人)'을 언급하며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추진을 비판했다.
임 사장은 "아직 방송통신 융합에 대한 틀이 명확하게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른 결정은 통신·방송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오히려 독점을 강화해 요금인상, 통신산업 위축 등 부작용을 불러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도 (인수합병으로) 판을 여러 번 흔들어 놓은 회사가 이번에도 스스로도 못 믿을 말로 정부와 업계, 국민을 속이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LG유플러스 권영수 부회장 역시 올해 1월 14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해 유료방송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면 이용요금이 대폭 인상될 것이다. 합병 후 3년 안에 이동통신, 초고속 인터넷 등 전 시장을 독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양사의 기업결합은 공정거래법상 불허돼야 한다"며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에 당위성이 없음을 강조했다.
경쟁사와 시민단체의 반대 공세가 거세지자 이튿날인 1월 15일 SK텔레콤은 긴급기자간담회를 열고 "아전인수격 해석과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 경쟁사 행태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발목잡기식 비방을 그만두고 소비자 편익을 높이기 위한 경쟁에 동참해달라"고 받아 쳤다.
이통사 간의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래부 역시 1월 20일 "CJ헬로비전 인수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신중히 검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 경쟁사 직원·소액주주 소송 제기 등 예고된 '실패'
이후 2월 3일 미래부 주최로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첫 토론회가 열렸다. SK텔레콤과 경쟁사들이 각각 추천한 4명씩의 대학교수들의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합병을 찬성하는 진영에서는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의 파상공세 속에서 국내 미디어·플랫폼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위기에 처한 케이블 산업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SK텔레콤-CJ헬로비전 합병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합병에 반대하는 교수들은 SK텔레콤-CJ헬로비전 합병은 동일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의 수평적 결합이라 지배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고, 방송이 가진 공적 기능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 당국의 꼼꼼한 심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 2월 26일 CJ헬로비전 주주총회에서는 합병안이 통과됐다. 3월 18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SK텔레콤의 시장 지배력 등에 관한 내용을 담은 '통신시장 경쟁상황 평가'(2015년도)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당초 SK텔레콤은 인수 작업을 마무리한 뒤 4월까지 CJ헬로비전 1주와 SK브로드밴드 0.4756554주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두 회사를 합병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무산됐고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5월 23일 CJ헬로비전과 SK브로드밴드의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게 산정돼 손해를 입었다며 CJ헬로비전 소액주주들이 회사 측을 상대로 공동 소송을 제기한 것.
이에 앞서 KT·LG유플러스 직원이 CJ헬로비전 상대로 인수합병 결의가 무효라며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첫 재판은 6월 3일 열렸다.
그리고 이달 4일 공정위는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측에 합병을 '불허'한다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전달했다. 공정위가 기업 인수합병을 불허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5일 SK텔레콤은 해당 판정에 "매우 충격적"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은 공정위에 인수합병 심사보고서와 관련한 의견서를 내야 하는데, 7일 양사가 제출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했으나 하루 만에 '불허'했다.
이에 양사는 11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공정위를 방문해 의견서를 제출했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은 "합병을 불허할 만큼 경쟁 제한성이 심하지 않다는 의견을 담았다"고 밝혔다.
◆ SKT-헬로비전 운명 결정할 쟁점은?
의견서에는 △경쟁 제한성 △방송권역별 지배력 △케이블TV M&A 차단 가능성 △시장 발전 침해 가능성 등과 관련된 공정위의 판단을 반박하는 내용이 담겼을 것으로 보인다.
양사는 의견서를 바탕으로 조만간 열릴 공정위 심리에 참여해 심사관을 상대로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CJ헬로비전은 양사가 합병하더라도 유료방송 점유율은 25.77%로, 1위인 KT(29.4%)에 이은 2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었다.
양사는 합병법인이 전국 21개 구역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면서 방송권역을 독과점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미 인터넷(IP)TV 등 전국사업자 중심으로 유료방송 시장 흐름이 변하는 것에 배치되는 지적"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이날 M&A 심리를 비공개로 진행해달라는 신청서도 제출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심리 중에 M&A와는 관계없는 영업정보와 비밀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 비공개 신청을 했다"며 공정위의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공정위 심의는 원래 공개를 원칙으로 하지만, 사업자의 영업정보와 비밀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회의 과정 전부 또는 일부를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심의에 참석하는 사업자들은 대부분 회의 비공개 신청을 하고 공정위도 이를 대부분 받아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의에서는 투자 계획이 방송시장 전체의 발전을 위한 것인지, 비슷한 사업을 하는 경쟁자 간의 인수합병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지, CJ헬로비전의 경영상태는 어떤지 등이 향후 쟁점으로 부각될 수 있다.
15일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양사의 인수합병에 대한 최종 결론이 날 예정이다. 사실상 무산 위기에 놓인 'SK텔레콤-CJ헬로비전의 합병'의 운명을 결정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