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타임스 조선혜 기자] 현금·수시입출식예금 등의 비율을 나타내는 자금의 단기화 정도가 3년6개월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투자처 등을 찾지 못한 자금들이 금융시장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1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총유동성(Lf·평잔 기준) 가운데 인출이 자유로운 수시입출식예금과 현금 등을 합친 협의통화(M1)가 차지하는 비율인 자금 단기화 수준은 지난 9월 19.9%에 달했다.
지난 2011년 3월 20.0% 이후 3년6개월만에 최고 수준이다.
자금 단기화 비율의 상승은 예비적 동기로 보유하는 통화가 늘었다는 의미여서 자금이 실물경제로 흘러 들지 않는 경향도 반영한다.
이 비율은 리먼사태가 발생한 2008년 9월 16.8%에서 2011년 2월 20.1%까지 오르고서 하락세로 전환해 2012년 9월 18.2%까지 떨어졌다. 이후 기준금리 하락 등을 계기로 단계적으로 올라 현 수준까지 상승했다.
한은이 지난 8월과 10월에 기준금리를 내리면서 시중 유동성은 늘고 있지만 단기성 금융상품에 상대적으로 많은 돈이 흘러 들고 있다.
기업 등이 보유한 단기 자금이 모이는 머니마켓펀드(MMF)에는 지난달 10조원 가량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이달 6일 설정액 100조9689억원은 5년여만에 100조원대로 올라섰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MMF가 추세적으로 늘어나는 배경은 부동자금 증가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의 수시입출식 예금도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수시입출식 예금의 증가액은 26조7000억원으로 전체 은행 수신 증가액 42조4000억원의 63.0%에 달했다.
대표적 저축상품인 정기예금도 1년미만 가입액 비중이 지난 9월에는 26.0%로 10개월내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다.
자금 흐름 지표인 통화승수도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에서 지속하고 있다. 통화승수가 낮을수록 금융회사들이 소비자를 상대로 한 신용 창출이 저조했다는 의미다.
월별 통화승수(평잔 기준 본원통화 대비 M2)는 작년 12월 19.9배로 16년10개월만에 처음 20배 밑으로 하락했다. 올해 들어서는 18.9배로 하락한 8월을 빼고는 계속 19배 수준을 나타냈다.
유동성 함정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단기 부동자금이 급증해 실물경제로는 자금이 흘러가지 않으면서 통화정책의 효과가 무력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건국대 오정근 특임교수(아시아금융학회장)는 "돈을 공급해도 실물경제 수요가 없는 현 상황은 유동성 함정의 초입 단계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기준금리 인하 결정 후 "통화정책 파급효과가 내·외수 불균형, 대·중소기업 불균형 등 구조적인 요인에 의해 약해졌을 수는 있다"면서도 "기준금리 인하의 파급효과가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