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그간 자신이 비싼 가격에 라면을 구입해 온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 강씨는 신사동과 이웃하고 있는 압구정동의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라면 가격 확인에 나섰다.
신사동 A슈퍼마켓에서 '신라면' 한 봉지는 650원, '너구리'는 72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신라면 5개가 한 묶음으로 포장된 멀티팩은 3150원, '너구리 멀티팩'은 3200원, '삼양라면 멀티팩'은 2980원이었다.
◆ "제품 가격 하락 효과? 실상은 달라"
A슈퍼마켓에서 500m 가량 떨어진 신사동 B슈퍼마켓에서는 '신라면'이 봉지당 600원, '너구리'는 640원에 팔리고 있었다. 또 '신라면 멀티팩'은 2920원, '너구리 멀티팩'은 3600원, '삼양라면 멀티팩'은 2800원 이었다.
A슈퍼마켓과 B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라면 가격 차는 강씨의 예상보다 컸다. A슈퍼마켓의 '신라면' 한 봉지는 B슈퍼마켓보다 50원, '너구리'는 80원이 더 비쌌다.
그런데 멀티팩은 B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제품 가격이 오히려 더 높았다. '너구리 멀티팩'은 무려 400원의 가격 차를 보였다. 강씨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두 슈퍼마켓 모두 '할인된 가격'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지만 기본 제품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할인폭 비교는 불가능했다.
이웃 동네인 압구정동도 상황은 비슷했다.
압구정동의 C슈퍼마켓에서 '너구리' 한 봉지는 720원, '삼양라면 멀티팩'은 2980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C슈퍼마켓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D슈퍼마켓에서는 '너구리'가 680원, '삼양라면 멀티팩'이 3000원 이었다. 제품 가격 차는 몇 십원으로 크지 않았지만 C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제품이 비싼 경우도, D슈퍼마켓이 비싼 경우도 있었다.
강씨는 "뉴스에서 '오픈프라이스 제도'와 관련된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며 "유통업체간의 자율경쟁으로 제품 가격이 내려가는 효과가 있다고 들었는데 실상은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라면 봉지에 소비자 권장 가격이 있을 때는 지역별, 유통업체별 판매 가격 비교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불가능 하다"며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당초 기대와는 달리 '가격 왜곡' 같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오픈프라이스 제도에 따른 유통업체간의 자율경쟁으로 라면 품목 가격 하락을 기대했던 소비자들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격 왜곡 현상' 같은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 |
||
유통업체가 책정한 가격만으로는 비교를 통한 합리적 소비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비교 기준이 모호한 탓이다.
라면 업체들이 제품 출고가격을 몇% 인상했다고 밝히더라도 최종 소비자가가 얼마나 오를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오픈프라이스 제도 시행 이전보다 소비자들이 가격정보에 더 어두워 졌다는 얘기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예상 항로를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 소비자는 "돈을 주고 라면을 구입하면서도 제 값을 주는지 바가지를 쓰지는 않는지 의심스럽다"며 "오픈프라이스 제도가 소비자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비자는 "소비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려고 정부가 오픈프라이스 제도를 시행한 것은 아니지 않겠냐"며 "제도의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시급히 손질해 바로잡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컨슈머타임스 최미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