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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프린트∙복합기 시장에서 점유율 3위를 달리고 있는 엡손이 최근 국내 출시한 복합기의 인쇄속도를 속여 판매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대용량 잉크 탱크 시스템'을 장착해 잉크 유지비를 줄여준다는 식으로 적극 홍보한 특정 제품의 출력속도가 지나치게 느린 것으로 드러났다.
엡손 측은 문제 사실 확인 요청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상태여서 추가 피해자가 속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 "글씨 다 깨지는 '절약모드'로 출력하라고?"
원모씨는 엡손이 지난 3월 출시한 복합기 'L200'을 새로 구입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보다 가격은 비쌌지만 '동급 최강의 출력속도를 자랑한다'는 광고 내용을 보고 선택한 제품이다.
원씨의 기대는 제품 사용 후 곧 무너졌다. 문서 1장을 인쇄하는데 무려 1분 40초라는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타 복합기 제품에 비해 인쇄속도가 지나치게 느리다고 생각한 원씨는 업체 측에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돌아온 답변은 '잉크절약' 모드로 설정한 뒤 인쇄하면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
업체 측의 안내대로 문서를 인쇄한 결과 속도는 빨라졌지만 인쇄품질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색상이 흐려지고 글씨가 정상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문서 내용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원씨의 계속된 불만 제기에 업체 수리기사가 인쇄속도 테스트를 위해 방문했다. 제품 상태를 확인한 업체 직원은 "일반모드로 설정하고 인쇄했을 때 장당 1분40초가 걸리는 것은 정상속도"라고 말했다.
홈페이지를 통한 제품 사양 설명에는 인쇄속도가 '절약모드' 기준으로 명시돼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이씨는 "글씨가 다 깨져 알아보지도 못하게 인쇄되는 '절약모드'로 설정하고 문서를 출력하는 사람이 있겠냐"며 "타 제품 사양 설명에는 절약모드가 아닌 일반모드를 기준으로 한 출력속도가 적혀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요즘 세상에 문서 1장 인쇄하는데 1분 40초나 걸리는 제품이 어디 있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18일 엡손에 따르면 'L200' 복합기는 기존 프린터의 교체형 잉크저장소(카트리지) 헤드 부분만 설치, 대용량 잉크통은 기기 밖에 따로 부착해 잉크를 손쉽게 추가로 주입할 수 있도록 한 제품이다. 잉크 유지비를 줄일 수 있다는 엡손 측의 대대적인 마케팅 공세에 제품을 이미 구입했거나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는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씨 외에도 잠재적 피해 소비자 수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엡손 측은 본보의 문제 사실 확인 요청에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 "담당자 부재중"…연락처 공개도 꺼려
이 회사 관계자는 "담당자가 부재중"이라며 "이메일로 먼저 연락을 취하라"는 말 뿐 담당자의 휴대전화번호를 기자에게 전달하는 것도 꺼려할 만큼 비협조적인 태로도 일관했다.
인쇄속도를 의도적으로 속여 판매했다는 의혹을 허술한 응대가 키운다는 지적이다.
직장인 강모씨는 "엡손의 기술력이 타사에 비해 떨어지는 것 아니냐"며 "문서 1장 인쇄하는데 2분 가까이 걸리는 제품을 무슨 생각으로 만든 것이냐"고 힐난했다.
대학생 김모씨는 "업체 측은 문제가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고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문제 사실에 대해 입을 닫는 것은 의혹을 인정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컨슈머타임스 최미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