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의 최고급 세단 '체어맨'(W700)을 몰고 있는 전모(서울 강남구)씨는 최근 주행 중 직접 겪은 교통사고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하다.
영동고속도로상에서 10중 추돌사고가 발생, 이 곳을 지나던 전씨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앞 차량을 그대로 들이박았던 것. 문제는 당시 차량에 장착된 에어백이 터지지 않아 전씨가 생명에 위협을 받았다는 점이다.
◆ "쌍용차의 무책임한 대답과 성의 없는 태도, 치가 떨려"
이후 전씨는 주거지 인근 쌍용차 영업소에 차량 수리를 의뢰했다. 차량상태를 확인한 쌍용차 관계자의 입에서는 뜻밖의 발언이 새나왔다. 차량의 파손상태를 살펴본 결과 에어백이 작동되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자료사진 참조)
전씨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소비자불매운동이나 고발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쌍용차 측은 그제서야 극단적 방법이 아닌 적당한 협의점을 찾아보자고 한 발 물러섰다.
전씨는 체어맨 차량만 이번까지 3대째를 구입한 이른바 '체어맨 빠'였던 탓에 받아들였다. 다만 전씨는 수리한 차량은 중고차로 내다 팔고 신차 구입에 따른 추가비용만 쌍용차 측에서 부담하면 좋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차량 하자 개연성이 그 배경에 있었다.
그러나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차량이상이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며 신차구매시 100만원의 할인혜택만을 제공하겠다는 쌍용차 측의 입장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전씨는 "차량의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는 최악의 경우에도 사람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에어백 아니냐"며 "쌍용차의 무책임한 대답과 성의 없는 태도에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특히 전씨는 "보상문제를 떠나 쌍용차 측의 횡포로부터 모든 소비자가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쌍용차 본사 앞에서 체어맨 차량을 부수는 퍼포먼스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분개했다.
전씨와 같은 에어백 미작동 피해사례는 본보는 물론 한국소비자원, 각종 포털싸이트 자동차 동호회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도처에 널려있다.
하지만 이렇다 할 피해보상사례는 찾기 힘든 실정이다. 에어백이 작동하는 '경우의 수'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각 완성차 업체들이 발을 빼고 있는 탓이다.
전씨의 피해사례를 입수한 쌍용자동차 관계자 역시 "범퍼레일(사진 표시부분)에 충격이 가해져야 에어백이 터진다"며 "차체가 높은 SUV차량의 뒤쪽과 추돌하다 보니 (전씨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앞차의 밑으로 파고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높이가 같은 상태의 차량 두 대가 충돌해 범퍼레일에 충격이 가해진 경우에만 에어백이 작동된다는 의미다.
◆ "에어백 미작동 불량 증명하기 어려워"
그는 이어 "전씨가 안경을 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 직후 외상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만약 에어백이 터졌다면 안경으로 인해 오히려 전씨가 상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명을 위협할 만한 큰 사고가 발생했다면 에어백은 정상적으로 작동했을 것이라는 부연이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사이드에어백이나 무릎에어백, 커튼식에어백 등은 차량 내부에 설치된 압력센서가 외부충격을 받으면 작동되도록 설계돼있다"며 "그러나 각 완성차 업체 별로 에어백작동 매커니즘이 다양해 소비자 개인이 에어백 미작동 불량을 증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불량 에어백'에 대해 소비자가 피해구제를 받거나 보상을 받기가 사실상 '하늘의 별따기'인 셈이다.
그런 가운데 소비자 일각에서는 에어백 미작동에 따른 피해와 관련해 집단 대응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에어백 작동 매커니즘과 무관한 에어백 불량건수가 늘어가고 있는데 따른 조처로 풀이된다.
'자동차10년타기시민연합' 관계자는 "자동차 사고가 급증하면서 안전부품의 오작동으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라며 "에어백 미작동으로 인한 피해자료를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에어백 미작동) 피해소비자가 업체 측으로부터 보상을 받은 전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며 "정부차원의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총 6종의 신차를 출시했다. 올해는 이보다 3배가 넘는 19종의 신차를 선보일 예정이나 그 만큼 수준 높은 안전성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소비자들 사이에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