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타임스 김한나 기자] 노래방 기기 업체인 금영의 홍보용 달력에 아키히토(明仁) 일왕 탄생일과 일본 건국기념일이 표기돼 있던 것으로 뒤늦게 드러나 소비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업체 측은 우리나라와 일본 등지에서 함께 쓸 수 있도록 제작된 달력이라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총 유통 분량의 80% 정도가 '국내용'인 것으로 확인돼 적절성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원가절감'을 이유로 내년도 달력 역시 같은 방식으로 제작하겠다는 것이 금영 측의 방침인 가운데 국내 반일감정을 도외시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A씨는 최근 가족들과 노래방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가족들끼리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즐기던 중 10살배기 아들로부터 "천황탄생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기 때문.
최근 들어 한문공부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 아들이 노래방내 비치된 달력에 쓰여진 12월 23일 '천황탄생일'을 읽어낸 순간이었다. A씨는 우리나라 달력에 표기돼 있는 '천황탄생일'에 의문이 들었다. 그 달력에는 일본건국기념일까지 소개돼 있었다.
A씨는 "왜 국내기업이 만든 달력에 일왕탄생일과 건국기념일이 표기돼 있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며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일본의 기념일들은 삭제하고 국내 유통시켰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본보 확인 결과 금영의 달력에는 일왕탄생일, 2월 11일 건국기념일을 포함 1월 15일 성인의 날, 10월 10일 1964년 도쿄 올림픽 대회를 기념하는 체육의 날 등 일본의 '기념일'이 상당수 표기돼 있었다.
이중 건국기념일은 지난 1966년 일본 건국의 의미를 고취시키고 일본 국민들의 애국심을 기른다는 취지로, 일왕탄생일은 아키히토 현 일왕의 태어난 날을 일본 국민으로서 축하하자는 취지로 각각 일본 국경일로 지정된 날이다.
금영 측은 이에 대해 '원가절감'을 이유로 문제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금영 관계자는 "금영은 국내를 비롯해 일본과 필리핀에 지사를 가지고 있다"며 "각 국 지사의 요구에 따라 통합 달력을 만들면서 일본 천황탄생일과 건국기념일을 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리핀의 국경 기념일, 우리나라 순국기념일과 광복기념일 등도 포함돼 있다는 부연이다.
이 관계자는 이어 "예전엔 우리나라, 일본, 필리핀 각각 별도의 달력을 제작했으나 원가절감차원에서 올해부터 통합 달력을 만들고 있다"고 해명했다.
◆ 일본 기념일 쓰인 달력...내년에도 '쭉~'
취재 결과 금영은 올해용 '3국 통합 달력' 약 1만부를 국내에서 제작해 8000부 정도를 대리점 등에 유통시키고 나머지를 일본과 필리핀 등지로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제작한 올해 달력 중 해외로 보내질 20%를 위해 국내 유통될 80%에 불필요한 기념일들을 표기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같은 금영의 통합 달력은 내년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금영 관계자는 "달력에 대한 문의나 항의를 받은 적도 없을뿐더러 큰 문제나 변수가 없는 한 통합 달력을 유지할 예정"이라며 "금영은 공공기관도 아니고 개인사업자일 뿐이지 않느냐"고 오히려 반문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불만기류가 포착됐다.
한 소비자는 "이웃나라 왕의 생일까지 챙기는 달력이라면 우리나라 이명박 대통령의 생일도 표기돼야 하는 거 아니냐"며 "국내에 유통된 달력에 일왕의 태어난 날이 기념일로 표기돼 있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소비자는 "천황이라는 단어 속에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시각이 내포돼 있기 때문에 천황이라고 부르게 되면 일본의 제국주의를 인정해 주는 결과나 다름없다"며 "금영이 도대체 일본 기업인지 우리나라 기업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