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사회사업-하리마야 스테이션
오사카의 가장 번화가인 미도스지에 나섰다. 간사이(關西)지역 최고의 상권과 역사를 자랑하는 이 거리에 서면 늘 일본상인의 저력과 역사를 느낄 수 있어 좋다. 요도바시와 비꾸카메라 등 전자제품 양판점 등을 둘러보면서 나른한 오후 시간을 즐겼다. 평소 다니던 대로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도 사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다시 중심가로 나왔다. 그런데 고층빌딩이 늘어선 미도스지 제일 번화가에 커피와 과자를 그냥 먹고 가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최고급 인테리어에 격조 있는 빌딩건물 1층이면 당연히 은행이나 이태리 패션점이 어울릴 텐데 공짜 커피점이라니….
점심시간이 막 지나서인지 이 공짜 커피숍에는 입구에서 대로변까지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커피값이 없어 아쉬운 노인들과 주머니 사정이 얇은 젊은 층이 대부분이다. 신기하고 호기심도 발동하여 다른 사람들과 함께 줄을 섰다. 오가끼 바, 일명 과자 코너에는 여섯 가지 쌀 과자가 비치돼 있고 옆 코너에는 커피와 몇 가지 차 종류가 깨끗이 셋팅 돼 있다. 작은 접시에 과자 몇 개를 담고 커피 한잔을 받아 좌석에 앉았다. 이 좋은 시설에 이 좋은 메뉴들이 날마다 공짜로 이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이해 되지 않았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다 거저 나눠주는 것도 아니고 오사카에서 가장 비싼 땅에 공짜 쉼터를 제공한 이유가 뭘까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종업원에게 묻고 수소문해서 알아낸 사연은 이렇다.
근대화의 물결이 휩쓸었던 1860년부터 효고현에서 호롱불을 켜는 등유와 덴푸라 튀김에 쓰이는 기름장사를 했던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2차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한 뒤 폐허가 된 가게를 운영할 길이 막막해지자 주민들이 좋아하는 센베이 과자를 구워 팔기 시작했다. 쌀 과자와 센베이는 동네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날로 번창했고 효고현을 떠나 다른 대도시에도 상점을 내기 시작했다. 이 과자점의 장남인 하리마야 다쯔지로는 1969년 히로시마 공과대학 조선공학과를 졸업하자마자 조선소 취직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과자점에 입사했다. 1971년 센베이 전문점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맛과 신용으로 영업을 밀어붙였다. 큰 돈은 벌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하리마야는 1986년 대표이사에 취임하고 혁신적인 디자인과 마케팅으로 일본의 주요 대도시 영업망을 확충해 나갔다.
그런데 하리마야는 대학시절부터 줄곧 지구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대학을 마치고 센베이 과자점을 운영하면서도 틈만 나면 환경문제의 완벽한 해결책이 없는지를 연구했고 수많은 자료와 서적을 탐독하면서 전문적인 식견을 키워 나갔다. 그러다가 1993년 일왕에게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이라는 논문을 써서 봉정하는 기회를 잡았다. 하리마야는 일왕의 권위를 곁들인 환경문제 전문가로 점차 대중에게 부각됐고 그 자신이 인생의 목표를 지구 환경목표의 중요성과 해결책을 연구하는데 바치기로 다짐하고 대기오염, 해양오염, 지구온난화의 악순환을 끊는 데 골몰했다. 하지만 한 개인이 해결책을 내기에는 너무나 벅차고 거대한 문제여서 하리마야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닫고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일 계획을 세웠다.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5천 명 이상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자 그는 팔을 걷어붙이고 삿포로와 아오모리 센다이 도쿄 등 전국 주요도시를 돌면서 환경 캠페인을 벌였고 연속 강의로 지구를 살리자는 호소에 나섰다. 다시 일왕을 졉견하고 환경문제에 대해 더 적극적인 왕실의 지원과 정부활동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캠페인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각인될까를 고민하던 하리마야는 센베이 공짜 체인점을 구상하기에 이른다. 커피와 과자를 무료로 제공하고 대신 환경문제에 대한 자신의 활동과 철학을 인쇄물로 그들에게 알려준다. 어떻게 보면 괴짜적인 발상이다. 하지만 하리마야의 생각은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일본인의 환경관을 바꾸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결심이다.
공짜점 '후리카페'의 운영은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가능하면 10대에서 30대까지의 젊은이들이 많이 와주길 기대한다. 이들에게 점차 잊혀져 가는 일본 전통과자 센베이를 알리고 동시에 지구환경문제의 중대성과 긴급성을 이해시키기 위한 리얼타임 정보제공이다. 또 하나는 과자구매에 관계없이 스넥을 제공하는 것이다. 국적과 인종 남녀노소를 구별하지 않는다. 물론 과자를 사고 싶으면 별도로 마련된 코너에서 일반가게와 똑같이 물건을 사도록 배려한다. 290명의 직원으로 한해 8천억 원의 매출을 올려 환경문제에 당당히 맞서고 있는 셈이다.
하리마야 스테이션(후리카페)의 심벌마크가 이채롭다. 일본의 국가 탄생설화에 나오는 남신 이자나기와 여신 이자나미가 삼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형상이다.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았던 태초의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환경적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문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인도에서는 빈민은행의 형태로 유럽에서는 저소득층 구호사업으로 미국에서는 사회책임세가 검토되고 있다. 또 워런버핏이나 빌 게이츠등 세계의 갑부들이 대규모 기부선언으로 21세기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국 역시 사회책임기업 논의가 본격화 되고 있다. 이 거대한 흐름 속에 일본의 작은 기업주가 사회책임기업을 운영하는 현장은 매우 의미 있게 다가왔다. 도요타나 마쓰시다, 소니 등 내로라 하는 대그룹들도 하지 못하는 일을 일개 중소기업이 거리에서 온몸으로 모범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소 엉뚱하지만 발상은 신선하고 또 깔끔한 스넥을 제공하면서 젊은이들의 마음을 끌어내려고 노력하는 종업원들의 진지한 태도는 후리마야 스테이션의 방문객들을 사로잡는다.
2008년 후쿠오카점을 시작으로 교토와 도쿄, 오사카, 고베, 나고야에 이미 체인점을 열었고 앞으로 도쿄 신주쿠점과 시부야, 삿포로, 파리, 뉴욕점을 구상중이라고 한다. 월드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언제쯤 한국에도 '후리카페'를 열 것인지가 관심거리다.
공짜라는 이유로 커피와 과자를 한참 집어먹다가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수없이 퍼주다 보면 사람들이 왜 퍼주는지를 알거야. 그래서 그들이 환경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면 지구환경문제에 작은 고민부터 해결될 수도 있겠어. 그런데 언제까지나 이 가게들이 버틸수 있을까? 이렇게 퍼주고도 잘 견디어 낼 수 있을까?"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