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주(莊周)는 조릉(雕陵)의 밤나무 밑 울타리를 거닐고 있었다. 그때 예사롭게 생기지 않은 한 마리의 새가 남쪽에서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날개의 넓이는 7척이나 되고 눈의 크기는 직경이 한 치나 되어 보였는데 그 새는 장주의 이마를 스치고 날아가더니 밤나무 숲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장주는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
"이것은 어찌된 새인가. 날개가 큰 데도 제대로 날 줄을 모르고 눈이 크면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로구나."
장주는 바지자락을 걷어 올리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서서 새를 잡는 화살을 들고서 새를 엿보았다. 가만히 보니까 그 나무 시원한 그늘 에서는 한 마리의 매미가 자기 몸도 잊은 채 울고 있었다. 그리고 한 마리의 사마귀가 잎사귀에 몸을 숨기고서 이를 잡으려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마귀는 매미를 잡는데 만 열중하여 자신의 몸을 잊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본 이상하게 생긴 새는 사마귀를 노리고 있었는데 그 새 역시 눈앞의 이익에 혹하여서 장주가 자기를 잡으려고 활을 들고 겨누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장주는 몸서리를 치면서 혼잣말로 탄식했다.
"아, 생물들이 서로 해치고 겨누는 과정에서 이해(利害)는 상대를 불러들이고 있구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장주는 활을 버리고 되돌아서 밤나무 숲길을 빠져 나왔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밤을 훔쳐가는 줄 알고 관리인이 쫓아오면서 욕을 퍼부었다. 장주는 새를 잡는 데 정신이 팔려 남의 밤나무 밭에 들어간 사실도 몰랐던 것이다.
장주는 돌아와 집으로 들어간 후 사흘이나 꼼짝도 아니하고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스승 장주의 모습을 본 제자 인저(藺沮)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요즘 왜 그렇게 심기가 불편 하십니까"
제자의 질문에 장주가 답하였다.
"외부의 사물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나는 진정한 나 자신을 잃고 있었다. 마치 흐린 물에 반해 맑은 물을 잊은 격이다. 나는 예전에 스승으로부터 '그 풍속 속에 들어가면 그 풍속을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거니와 처음부터 금지구역인 그런 밤나무 밭 속에는 들어가지 말았어야 옳았다. 이번에 나는 조릉을 산보하다가 자신을 망각한 탓으로 들어가지 않아야 할 밤나무 밭에 들어가 나 자신을 상실한 탓으로 관리인으로부터 모욕을 받았다. 내가 마음이 편치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우화 한 구절이다. 장자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우화를 통해 인간세편의 취지에 입각한 글들을 많이 썼다. 그중에서도 산목(山木)편에 나오는 이 우화는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매미는 시원한 그늘에서 자신을 잊은 채 울고 있었고 사마귀는 매미를 노리고 매미를 잡는데 정신이 팔린 사마귀는 새가 노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마귀에 팔린 새는 활시위를 당기려는 장주를 예상 못하고 장주는 새를 잡으러 간곳이 남의 밤나무 밭임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
예상 밖의 결과를 남기고 6.2 지방선거가 끝났다. 이래서 졌다, 저래서 이겼다, 무성한 분석과 뒷얘기가 난무한다. 자기 눈앞의 이익을 좇아 동분서주하다가 이제 돌아와 거울 앞에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여당과 청와대는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며 뼈저린 후회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하지만 고요한 수면만 보고 해저의 엄청난 민심의 물살을 감지하지 못한 장본인들은 아직도 수가재주 역가복주(水可載舟 亦可覆舟) 즉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사태를 그리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여론조사 압승 시나리오를 믿고 그런 보고를 줄줄이 외워댔던 그 참모들은 이 마당에도 자기만 살겠다는 장자의 우화를 되풀이하고 있다. 행색이 초라해진 채 인사쇄신을 건의하겠다며 설왕설래하는 총리, 개혁을 주도하겠다며 나선 초선의원들의 쇄신 연판장, 하지만 소식 없는 민심 수습책….
후보자 때는 하나같이 소통의 리더가 되겠다고 약속하고 다짐하지만 취임 후에는 사람 울타리에 갇히고 자기도 모르게 남의 밤나무 밭으로만 발길을 돌린다. 2500년 전 장자의 시대나 지금이나 시공을 초월해 어쩌면 똑같은 제왕의 모습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몇 명의 지도자만 성공한 리더로 사가들의 평가를 받는다. 역사가 증명하는 보편적 진리다.
"천하에서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백성이다. 홍수나 화재, 호랑이, 표범보다 훨씬 무서운 존재다." 일찍이 허균이 <호민론>에서 백성을 깔보는 위정자들에게 던진 경고다. 정치인은 항상 국민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한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han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