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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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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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레드 호세이니라는 작가는 이름부터 낯섬이 느껴지는 작가입니다. 다른 책으로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고, 영어나 스페인어, 일어 등 자주 접할 수 있는 언어로 이루어지지 않은 작가의 이름에서 이질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외교관인 아버지와 여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밑에서 교육받으며 자라났습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후 미국으로 망명, 그곳에서 영어를 배워 의사가 되고, 작가가 된 파란만장한 삶을 지닌 사람이지요. 이렇게만 요약해 두면 '영화 같은 삶' 처럼 느껴집니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두었으니 굉장히 똑똑했겠지? 라던가, '의사가 될 정도였으면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을 거야.' 같은 편견들이 작가 소개를 보는 내내 곰팡이처럼 제 머릿 속을 잠식해 갔습니다. 책장을 펼쳐 본 소설을 읽기도 전부터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마음이 설렙니다. 어쩌면 마음 한 켠에서는 그가 겪었던 아픔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사무치는 연민을 감당해내기 어려웠던 걸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는 마리암이라는 어린 여자아이의 삶에서 시작됩니다. 그녀는 돈 많고 다정한 부자 아버지를 두었지만, 사생아라는 꼬리표를 지울 수가 없었지요.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언제나 표독스럽고 나쁜 저주를 퍼붓는 어머니 '나나'도 있습니다. 그 어린 소녀의 삶은 단순하고, 고요하고, 평화로울 정도로 반복적입니다. 하지만 그 반복적인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건 바로 그녀의 선택, '새로운 것을 접해보려는' 그 호기심에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를 만나러 가고, 그곳에서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이후에는 강요된 결혼을 하게 되고, 라일라라는 소녀를 알게 되고................그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소설은 나나, 마리암, 라일라, 아지자에 이르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시기의 아프가니스탄에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갔던 그녀들의 이야기는, 서로 서로가 무수히 많은 공톰점과 차이점을 공유하며 잔실처럼 연결되어 있어요.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얇고 표면적인 사실 밖에 몰랐기 때문에, 읽는 내내 고통과, 놀람과, 슬픔과, 연민과, 행복의 연속이었답니다. 히잡을 두르고 거리로 나서는 이슬람 여성들의 사진이나 비디오를 볼 때 마다 '이상하다, 왜 저렇게 불편하게 생활하지?' 하고 의문을 가지기 일쑤였지만, 이제는 그녀들의 얼굴에서 나나를 보고, 마리암을 보고, 라일라를 보게 됩니다. 그녀들이 가지고 있을 '결혼'과 '사랑'에 대한 인식, 그리고 '알라신'과 '코란'에 대한 인식. 그 모든 것들을 이제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슬프지만 아름다운 소설, 찬란하지만 고요하기 그지없는, 평범하지만 그래서 특별한 소설을 읽을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일요일 오후, 따스한 무언가를 가득 가슴 속에 담으며 마지막 장을 덮습니다. 

 

덧 : 호세이니의 다른 소설, [연을 쫓는 아이] 도 조만간 읽어볼 생각입니다. 이 책은 원서로 구입했는데 호세이니가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는 영어를 전혀 몰랐다는 걸 감안해 볼 때, 아마 문장이 단순하고 어려운 수사 표현은 그다지 많지 않겠거니 하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많이 들어봤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네요.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 포함합니다.

 

덧2 : 악역이라면 악역인 라시드. 좀 더 고통스럽게 죽었어야만 했어요, 그 사람은!

 

덧3 : 10년전의 타리크와 라일라의 사랑은 풋풋하고, 아름답고, 가슴이 설렜던 반면 10년 후의 그들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색이 바래보였답니다. 세월의 무게는 무시할 수 없는 걸까요? 아니면 인생은 영화같지 않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요. 그래도 다시 만나서 행복할 수만 있다면 어느정도의 바램쯤이야.

 

덧4 : 아프가니스탄의 법 체계는 대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 걸까요? 라시드를 죽였던 건 '과잉방어' 보다는 '지속적인 구타와 협박, 그리고 그 순간의 살해 위험'에 대한 '정당방위'가 아니었을까요? 어떻게 재판에서는 이런 것들 전부를 무시하고 15분 만에 총살형을 내릴 수 있나요? 여전히 그런 모순적인 법제도가 유지되고 있는 걸까요? 정말요? 

 

출처: 소유흑향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dnjsgl3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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