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왕' 권혁 페이퍼컴퍼니 통해 보유한 900억 압류 정당
[컨슈머타임스 이수영 기자] '선박왕' 권혁 시도그룹 회장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보유한 900억원 규모의 부동산과 주식을 압류하는 게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행정5부(성백현 부장판사)는 권 회장이 실소유한 홍콩 법인 '멜보 인터내셔널 인베스트먼트 리미티드'가 세무당국의 압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1심과 달리 국세청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27일 밝혔다.
국세청은 권 회장이 소득세 2774억원 과세에 불복 소송을 진행하던 2013년 멜보가 보유한 897억원 규모의 국내 부동산∙주식을 압류했다. 권 회장의 소득세가 확정될 때 멜보의 자산을 팔아 국고로 회수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멜보는 2014년 세무당국을 상대로 '부당한 압류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권 회장이 멜보의 주식을 1주도 갖고 있지 않은 만큼, 멜보가 그의 세금을 대신 낼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멜보의 주식 100%는 조세회피처 바하마의 페이퍼컴퍼니 '오로라멜바홀딩'이 보유했다.
그러나 이는 복잡한 지배구조를 이용한 눈가림이었다. 권 회장은 바하마 로펌과 다른 페이퍼컴퍼니를 거쳐 '오로라' 지분 100%를 갖고 있었다. 명의신탁을 통해 자신의 정체도 숨겼다.
재판부는 "권 회장은 멜보와 멜보의 자회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고 멜보 주식 100%를 소유한 주주"라며 "다단계 출자구조와 명의신탁이 선박업계의 국제 관행이라 해도 이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멜보는 대주주 권 회장의 국세체납액의 '제2차 납세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며 압류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제2차 납세의무란 체납자와 일정 관계에 있는 사람·법인이 부족액을 보충하게 하는 의무다.
이번 판결로 세무당국은 고무된 분위기다.
드러난 국내 재산이 거의 없다고 알려진 권 회장에 대해 실질적 징수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홍콩, 케이만군도 등의 페이퍼컴퍼니를 복잡하게 엮어 시도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판결이 확정될 경우 권 회장의 국외 재산 유출을 실질적으로 막을 수 있다"며 "이는 조세회피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세금을 피하려는 다른 기업인에 대해서도 당국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계기"라고 말했다.
권 회장은 1990년 선박관리업체 시도물산을 세우고 한국∙일본∙홍콩 등지에서 선박 용∙대선, 자동차 해상운송 사업을 키우며 '선박왕'이 됐다. 한때 시도그룹 자산은 10조원대에 이르고 권 회장 개인 자산은 1조원 규모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국세청은 2011년 그가 역외 탈세를 저질렀다며 역대 최고액인 4101억의 추징금을 물리고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2300억원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올해 2월 "고의성은 없었다"며 2억여원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권 회장은 국세청이 부과한 소득세 2774억원이 정당한지를 놓고도 4년째 재판 중이다.
1심과 2심은 2063억원 추징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권 회장의 납세 의무를 인정하면서도 일부 세액을 다시 계산하라며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첫 재판은 내달 18일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