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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중국특수 소멸…한국 경제구조 전환 느려"
[컨슈머타임스 박정수 기자] 지난 10년간 누려온 중국 고속성장에 따른 '특수'가 소멸하고 있음에도 한국이 내부의 이해갈등 속에서 새로운 경제구조로 신속히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5일(현지시간)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한국과 인도네시아 순방에 앞서 IMF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한 자리에서 "과거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 성과를 놓고는 국제사회에 이견이 없지만, 중장기적으로 한국이 남다른 성장기조를 유지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국장은 우선 한국 경제를 둘러싼 대외 환경과 관련해 "지난 수년간 아시아 국가들은 선진국이나 다른 지역의 신흥국과 비교해 양호한 성적을 보여왔지만, 앞으로는 지난 10년간 중국의 고속성장 덕에 손쉽게 누려왔던 혜택이 사라지면서 누가 정말 실력을 갖춘 국가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선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제조업 중심의 성장구조가 점차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서비스산업 등 비제조업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축을 찾아야 한다"며 "제조업이라는 기본 엔진만으로는 청년실업 문제도, 급격한 성장률 저하 추세도 막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이 국장은 "제조업으로 한때 잘 나가던 일본이 지난 20년간 정체됐던 과정을 지켜보면서 유사한 경제구조와 잠재적 문제점을 가진 한국경제의 미래에 관해 낙관적이지 못한 시각이 많이 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킬 충분한 잠재력이 있음에도 이념 논쟁과 이해 갈등으로 새로운 경제구조로의 구조 전환이 신속히 이뤄지지 못하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경제의 앞날은 경제부처를 넘어 국회의 노력에 달려 있다"며 "이미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 경제가 성공 신화를 지속하려면 상이한 이념과 이해관계 속에서 지체돼온 경제구조 개혁이 신속히 추진되도록 합의기구로서 국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 시점에서 한국 경제의 성적표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평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선진국은 자신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 미만의 성장에 허덕여왔던 데 비해 선진국 가운데 하나인 한국이 3%대 성장을 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7%대의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좋은 성적표라고 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기에 "전 세계가 힘든 상황에서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성장률이 과거에 비해 낮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오히려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은 한국이 재정 지출을 확대하고 환율변동성을 용인함으로써 수입을 늘려 세계경제의 회복에 기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 국장은 "생활이 어려워진 우리 국민이 이러한 견해에 공감하기 어렵겠지만, 상황이 더 어려운 선진국 국민의 인식이 어떻다는 것을 우리도 알 필요는 있다"며 "선진국들의 눈에는 한국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개발도상국가가 더이상은 아니고, 국제사회에 공헌해야 할 선진국의 일원"이라고 말했다.
최근 갑작스러운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배경에 대해서는 "중국에 대해 시장친화적인 외환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IMF로서는 이번 조치를 바람직한 금융시장 개혁의 하나로 평가한다"며 "특히 이번 조치가 수출경쟁력 제고보다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은 그동안 위안화 가치를 강세를 보이는 달러화에 연동하다 보니 실물경제가 둔화되는 와중에도 이자율과 지급준비율을 높게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조치를 통해 달러화와의 연동 고리를 완화함으로써 통화정책을 환율조정 수단이 아니라 경기조절을 위한 전통적 거시경제조정 수단으로 정상화했다는 의미도 있다"고 평가했다.
위안화 평가절하가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에는 "중국과의 생산망 연결고리가 어느 단계에 있느냐에 달라질 수 있다"며 "원자재와 중간재를 공급하는 국가라면 위안화의 가치하락으로 중국의 완제품 수출이 늘어나는 것이 반가운 소식이 되겠지만, 중국 기업과 완제품 및 중간재 수출경쟁을 하는 국가라면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중국의 성장률 둔화에 대해 "IMF는 중장기적으로 볼 때 바람직한 조정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며 "10년간 누려온 고도성장의 뒷면에 과도한 신용팽창과 지방정부 부채증가, 주요 산업의 공급과잉 등 부정적 요인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착륙을 피하려면 성장률이 자연스럽게 낮아지며 과잉투자 설비가 조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유럽 경제에 대해서는 "지난 6년간의 심각한 경기침체 이후 국제유가 하락과 유럽중앙은행의 확장적 통화정책에 힘입어 드디어 회복세가 뚜렷해지고 있다"며 "그러나 높은 실업률로 인한 수요부족, 기업과 은행의 재무구조 악화, 생산성 저하 등이 위험요인으로 남아있고 추가적인 거시경제정책 운용의 폭도 크지 않은 게 사실이라 미국에 비해 회복세가 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그리스 위기 해법에 대해 "재정건전성과 경쟁력 제고를 위해 연금개혁과 세제 개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그리스 정부가 실질적 성과를 보여주는 동시에, 현실적으로 부채상환 가능성을 높여주기 위해 유럽 채권국들이 일정규모 이상의 부채 탕감에 합의해줘야 한다는 게 IMF의 공식입장"이라고 밝혔다.
이 국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G20 기획단장을 거쳤다. 이후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다가 작년 2월 한국인 최초로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국장에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