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슈머타임스=김예령 기자 | 올해 상반기 들어 국내 주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해외 파트너사로부터 기술을 반환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제약·바이오 업계는 단순한 '연구·개발(R&D) 실패'로 보기보다 차세대 파이프라인에 역량을 재배치할 수 있는 '전략적 전환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지난 3월 독일 베링거인겔하임(이하 베링거)으로부터 비알코올성 지방간염(MASH) 치료제 후보물질 'YH25724(BI 3006337)'의 기술 반환 통보를 받았다.
MASH는 음주 여부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대사성 간질환이다. 이 질환은 염증과 섬유화를 유발해 약 20%는 간경화로 진행되며 이후 간암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치료제가 없어 미충족 의료 수요가 높은 영역으로 꼽힌다.
YH25724는 유한양행이 자체 기술로 발굴한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섬유아세포 성장 인자 21(FGF21) 이중 작용제다. 지방간염 해소와 항섬유화 효과를 통해 간세포 손상 및 염증을 줄일 수 있어 주목받아 왔다. 국내 개발 현황 기준으로는 가장 앞선 후보물질로 평가된다.
기술수출은 2019년 체결된 베링거와의 공동개발·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이뤄졌다. 이는 당시 유한양행이 선급금 4000만 달러(약 534억원) 및 개발 단계에 따른 기술료(마일스톤)를 포함해 총 8억7000만 달러(약 1조2600억원)를 받고 기술 이전을 진행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기술수출 이후 베링거는 유럽에서 임상 1a상을, 북미에서는 비만·지방간 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1b상을 각각 완료했다. 작년 5월에는 일본에서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 1상을 추가 개시한 바 있다.
구체적인 기술 반환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는 약물 자체의 한계보다는 파트너사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조정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실제 FGF21 계열 단독 효능제를 개발 중인 일부 글로벌 기업들이 긍정적인 임상 성과를 내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물질의 잠재력이 부족해서 반환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이번 계약 해지는 파트너사의 전략 변경에 따른 것으로, 긍정적인 임상 결과와 높은 의료수요를 바탕으로 개발을 지속해 나갈 것을 고려 중"이라며 "기존에 수령한 5000만 달러(선급금+마일스톤)는 반환 의무가 없어 재무적 손실은 없다"고 강조했다.
대웅제약도 지난 3월 섬유화 질환 치료제 '베르시포로신'에 대해 중국 파트너사 CS파마슈티컬즈로부터 기술이전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 후보물질은 PRS 단백질 저해를 통해 콜라겐 과생성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특발성 폐섬유증 등 적응증에 대한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계약 총액은 최대 4000억원 규모였으며, 기존 수령한 선급금 1000억원에 대해서도 반환 의무는 없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CS파마슈티컬즈의 R&D 전략 변경에 따른 것으로 물질 자체의 안전성, 유효성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티움바이오가 이탈리아 제약사 키에지로부터 호흡기질환 치료제 개발 프로그램 'NCE401'에 대한 계약 해지 및 권리 반환을 통보받았다.
통상 기술 반환은 '개발 실패'로 인식되기 쉽지만 이를 위기보다 기업의 전략적 재정비의 계기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단순한 계약 종료가 후보물질 자체의 문제를 의미하지 않으며 기업별 자원 재배치에 따른 전략적 판단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파트너십이 깨졌다고 해서 곧바로 R&D 실패로 단정 짓긴 어렵다"며 "빅파마들은 다수의 기술이전 계약을 병행하기 때문에 내부 재무 상황이나 우선순위에 따라 프로젝트 조정이 흔하게 이뤄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