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슈머타임스=김하은 기자 | IBK기업은행의 전‧현직 임직원 등 수십명의 이해관계자들이 공모해 총 882억원에 달하는 부당대출을 일으킨 것으로 드러났다. 금품수수와 골프 접대 등을 대가로 900억원에 육박하는 부당대출을 내주며 국책은행의 자존심을 구겼다.
게다가 기업은행은 제보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인지하고도 사건을 은폐·축소하려 한 정황이 드러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겉으로는 내부통제 강화를 외치지만 내부에선 쉬쉬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15일 기업은행 부당대출과 관련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사 결과 기업은행의 부당대출은 7년간 20여명이 연루돼 조직적으로 이뤄졌으며, 이를 은폐하려던 정황도 함께 포착했다.
기업은행의 전·현직 임직원과 그 배우자, 친인척, 입행 동기, 사적모임, 거래처 등으로 얽혀 토지 매입, 공사비, 미분양 상가 관련 조직적 부당대출이 발생했다. 대출 건수는 58건으로 882억원에 이른다.
이중 기업은행에서 14년간 재직하다 퇴직한 직원 A씨는 785억원에 달하는 부당대출을 일으킨 것으로 확인됐다. 퇴직 직원 A씨는 부동산 중개업소와 법무사 사무소 등을 차명으로 운영하면서 대출 관련 증빙이나 자기 자금 부담 여력 등을 허위로 작성해 785억원 상당의 부당대출을 51건 받은 혐의를 받는다.
거액의 부당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기업은행 직원인 자신의 배우자(심사역), 입행동기(심사센터장, 지점장)를 비롯해 사모임과 거래처 관계 등으로 친분을 쌓은 임직원 28명과 공모하거나 조력을 받았다. 이 부당대출은 2017년 6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7년여 동안 이뤄졌다.
A씨는 토지를 구입하기 위해 2018년 9월부터 11월까지 자기 자금 없이 대출금만으로 구입하려 한 정황도 드러났다. 기업은행 한 지점장과 심사센터 심사역인 A씨의 배우자는 허위 증빙 등을 이용한 이른바 '쪼개기 대출'을 통해 64억원의 부당대출을 내줬다.
그는 또 거래처 자금을 통해 자금력이 있다고 허위로 꾸미기도 했다. A씨는 지식산업센터 신축 토지 매입 및 공사비 조달을 명목으로 2020년 9월 24억원의 거래처 일시 차입금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ㄱ법인 명의로 허위용도의 운전자금대출 4억원을 받아, ㄴ법인의 자기자금으로 가장(토지매입 계약금으로 사용)한 후, ㄴ법인 명의로 60억원 대출을 받아 토지를 매입하는 식이다.
당시 심사역인 A씨의 배우자는 자금조달계획 등을 허위로 작성해 59억원의 대출을 승인했다. A씨는 대출 심사 통과 후 일주일 만에 24억원을 거래처에 모두 반환했다.
부당대출 실행 과정에서 임직원 다수에게 금품 및 골프 등 향응을 접대한 정황도 금감원에 포착됐다.
A씨는 기업은행 임직원 다수를 대상으로 골프 접대를 제공하거나 일부 임직원 배우자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등 부정채용 혐의도 드러났다. 실제 부당대출에 연루된 8명의 배우자는 A씨가 실소유주인 업체에 취업하는 방식 등으로 15억7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이밖에도 부당대출 관련 임직원 10명을 비롯한 23명은 국내와 필리핀 등에서 골프 접대를 받은 혐의도 받는다.
![김성태 IBK기업은행장이 26일 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 참석해 사과문 및 쇄신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IBK기업은행]](/news/photo/202503/638910_554783_1729.jpeg)
기업은행의 부당대출 잔액은 535억원(2월 말 기준)으로, 이 가운데 95억원이 부실화 됐다. 이는 18%에 이르는 액수다. 금감원은 기업은행이 부당대출 적발 이후 대출 돌려막기 등이 어려워지면서 향후 부실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기업은행이 지난해 8월 이런 문제를 내부적으로 파악했음에도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려 시도한 것이다. A씨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자체 조사에 나섰지만 임직원의 금품 수수 등 혐의 조사 내용을 당국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검사를 통해 확인된 부당대출 등 위법사항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와 절차에 따라 엄정 제재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위법·부당행위를 엄정 제재하고 범죄 혐의는 수사기관에 통보하는 한편, 이해상충 방지 등을 위한 내부통제 실태점검과 업계 표준 가이드라인 마련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금융사고를 엄중한 사안이라고 판단해야 하는 게 먼저"라며 "최근에는 친인척과 퇴직자를 중심으로 한 부당·불법대출이 늘고 있어 은행 내부적으로 집중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업은행은 지난 26일 주요 간부 전원이 참석하는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대국민 사과를 비롯, 'IBK 쇄신 계획'을 발표했다.
기업은행은 이날 부당대출 등의 문제가 내부통제와 업무 프로세스의 빈틈, 시스템의 취약점과 함께 부당한 지시 등 불합리한 조직문화가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업무 프로세스, 내부통제, 조직문화 전반에 걸친 강도 높은 쇄신을 단행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