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영국 스톤헨지, 테스의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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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영국 스톤헨지, 테스의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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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남쪽 솔즈베리 대성당을 뒤로 하고 벌판을 찾아 달렸다. 변덕스런 날씨, 오가는 비바람과 구름사이를 지나 넓은 평원으로 들어섰다. 스톤헨지는 멀리 신화처럼 그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누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유적' 은 역사를 넘어 현세로 이어지고 있었다. 고대 지배층들의 무덤이었거나 아니면 엄숙한 제례의식의 장소였을 것이라는 추측만이 무성한 장소다.

제단이었다면 우주에서 날아온 빛을 신성하게 맞아들여 지구의 의식을 치르듯이 무엇인가 거룩한 힘을 기다리면서 고대인들의 시대를 녹여냈을 것이다. 웅장한 거석들은 서로 어깨를 마주잡고 함께 바람의 춤을 추는 형상으로도 보였다.

이곳에는 별처럼 순수한 여인 '테스'의 슬픔이 있다. 영국작가 토마스 하디(1840-1928)의 소설 주인공 테스가 불행했던 생의 마지막 밤을 보냈던 곳이다. 작가는 왜 사방이 뚫려 완전하게 드러난 스톤헨지를 설정하고 테스를 여기에서 천상으로 보냈는지 오래전부터 궁금했었다.

부유한 더버빌가의 주인아들 알렉에게 강제로 순결을 빼앗기고 불행한 생을 이어간 테스가 안타까워 목이 울컥해졌던 소설의 창작무대 스톤헨지는 지평선 나지막한 언덕에 홀연했다. 이 신비의 제단에서 테스는 독자들을 울렸다. 솔즈베리 평원은 햇살을 받아 아름다운 녹색의 화폭처럼 에너지 가득한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왔다.
 

▲영국 솔즈베리 스톤헨지에서
▲영국 솔즈베리 스톤헨지에서

역사사학자들은 스톤헨지가 로마시대 이후 태양신을 위해 지어졌고 특정한 시간을 표시하도록 설계되었다고 분석했다. 고대의 천문대였던 셈인데 신라의 첨성대와 비슷하다는 견해다. 반대로 스톤헨지 자체가 고인돌 무덤이라는 시각도 있다. 무수한 답사와 고증에도 불구하고 아직 유력한 결론은 없다. 세계 10대 불가사의,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정면에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오른쪽, 왼쪽으로 돌아가며 세월에 스러진 돌덩이들을 응시했다. 높이 8미터, 무게 50톤짜리 거석들이 80여개나 세워져 있는 모습은 알 수 없는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세워진 기둥 돌 위에 거석들이 가로 걸쳐져 원을 그리도록 배치되어 있었다. 안쪽의 블루스톤 서클은 작고 불규칙한 돌들로 만들어졌다. 블루스톤은 다섯 기의 말발굽 모양 석탑구조를 연출해내고 있었다.

원형 바깥에는 Y홀, Z홀이라고 불리는 작은 구덩이들이 파여 있었다. 홀로 저만친 떨어져 서있는 힐 스톤의 모습은 고독했다. 사이사이 다른 돌이 태양과 일직선으로 놓여 해시계 역할을 했다는 가설도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이 지역을 오래 다스렸던 부족국이 있었고 스톤헨지는 그 유력가문의 무덤이라는 것이 하나의 추측이다. 켈트족들의 제사장 유적지라는 설이다.
 

▲스톤헨지 유적지
▲스톤헨지 유적지

스톤헨지는 '공중에 걸쳐져 있는 돌' 이다. 강화도나 전북 고창에 산재해 있는 한반도 고인돌과 비슷하지만 높이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동아시아와 멀리 잉글랜드 솔즈베리가 거석문화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근 현대 사학계는 죽은 자들의 영혼을 모시는 고대 종교시설의 일부로 보기도 했다.

스톤헨지의 비밀은 이곳에서 2.4킬로 떨어진 '우드헨지'의 증거로 실마리가 풀렸다. 출토된 동물 뼈를 탄소연대 측정 결과 기원 전 3천 년 쯤으로 추정되었다. 일대에 천여 가구 이상의 고대 도시가 있었다는 것이다. 선사시대 거석들은 이 곳에서 옮겨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세로 기둥이었을 거석이 풍우에 쓰러져 중앙제단처럼 놓여져버린 블루스톤이 눈길을 끌었다. 청순한 여인 나스타샤 킨스키가 이 제단에 누워있던 영화 '테스(1979.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미국영화)' 는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한 주술이었다. 아날로그 시대의 영혼처럼 내 머릿속에 묻혀있는 정지화면이다. 나쁜 남자 알렉을 죽이고 에인절과 도피 끝에 이 제단위에서 잠든 테스의 모습은 성스러운 한 폭의 그림이었다.

살인혐의로 교수형에 처해질지도 모르니 북쪽으로 도망가자는 에인절의 요청에 테스는 저녁밥도 짓고 와인도 준비해서 마지막으로 쉬고 싶다며 스톤헨지를 떠나지 않았다. 그 시대 사회적 편견의 제물로 테스의 일생이 묘사되었다는 사실은 시간이 지난 뒤 알게 되었다.
 

▲영화 테스. 나스타샤 킨스키가 제단석에 누워있는 장면
▲'더 버빌가의 테스' 에서 주인공(젬마 아터튼)이 제단석에 누워있는 장면

내가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도 빛과 바람은 일정한 리듬을 주기로 평원을 드나들었다. 파도처럼 때로는 강렬하게, 또는 불규칙하고 고독하게 평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세로 선 기둥 돌 들이 가로 누운 돌들을 이고 수많은 세월을 견디어 온 벌판위로 바람이 빠르게 내달리고 있었다. 바람의 신전으로 회자되는 이유를 알았다.

바람은 언제나 나의 친구다. 솔즈베리 평원의 바람결에 내가 서있었다. 나는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를 알려하지 않았다. 바람이 어디로 가는지를 묻지도 않았다. 바람 속에 내가 그냥 서있었으므로 바람의 처음과 끝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바람이 어느 날 내 삶속으로 다시 찾아오리라는 기대만이 남아있는 뿐이다.

가난한 아버지가 부잣집에 테스를 보내 한몫 챙기려 하는데 사촌 알렉의 호의에 속아 임신하고 미혼모의 고단한 시간도 잠시, 죽은 아이의 무덤에 세운 나무십자가에 들꽃 한 묶음을 놓아주는 테스의 모습은 애잔함 자체였다. 거대한 스톤헨지 사이로 테스의 영혼이 자유를 찾은 듯 햇빛은 풀밭위로 무수하게 쏟아져 내렸다. 출렁이는 대지의 숨결이 꿈틀거리는 벌판의 오후다.
 

▲힐스톤에서 본 스톤헨지
▲힐스톤에서 본 스톤헨지

테스를 만들어낸 작가 토마스 하디는 소설을 쓰기 위해 스톤헨지를 자주 드나들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임종 때 '루바이야트' 를 소리 내어 읽어달라고 했다. 페르시아의 시인 오마르 하이얌의 4행시를 들으면서 이승에서의 마지막 눈을 감았다.

"성현들과 더불어 지혜의 씨를 뿌리고
내 손수 정성껏 가꾸어 왔으나
마침내 거둔 것은 다음의 한마디
'나, 물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노라'

이 세상으로 어떻게 태어났는가
어디에서 왔는가도 모르는 채로
물처럼 이 세상 끝없이 흐르다가
사막의 바람처럼 이 세상 하직하고 흘러만 가네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로 가는가
묻지를 말게
마시고 또 마시는 이 금단의 술이
세상의 무상함을 잊게 해주리".

(Rubaiyat. Omar khayyam 1048-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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