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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 한행우 기자] 기자와 PD로 오랜 세월 일해 온 작가의 늦깎이 데뷔작인 이 소설은 인구 900만의 스웨덴에서 100만 부, 전 세계적으로 500만 부 이상 팔리며 '백 세 노인 현상'을 일으켰다.
이 책은 1905년 스웨덴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살아온 100년의 세월을 코믹하고도 유쾌하게 그린 작품이다. 급변하는 현대사의 주요 장면마다 본의 아니게 끼어들어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는 주인공의 활약은 독자로 하여금 역사의 생생한 현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작품은 2005년 5월2일 100살 생일을 맞은 알란이 양로원을 탈출하는 데서 출발한다. 양로원을 빠져나와 처음 찾아간 버스 터미널에서 그는 우연찮게 어느 갱단의 돈가방을 손에 넣게 되고 자신을 추적하는 무리를 피해 도망 길에 나서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잡다한 무리가 그의 노정에 합류한다. 그사이 스웨덴 소읍은 연로한 노인을 찾기 위해 형사반장이 급파된다. 100세 노인 일행과 그들을 쫓는 갱단, 그리고 그 뒤로 또다시 그들의 자취를 따라가는 경찰. 보통의 추격전과 달리 도망치는 쪽이 여유롭기 그지없는 이 술래잡기는 신선하다.
노인이 도피 과정에서 겪는 모험과 쌍을 이루는 소설의 다른 한 축은 그가 살아온 100년의 이야기이다.
그는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장군의 목숨을 구하는가 하면 미국 과학자들에게 핵폭탄 제조의 결정적 단서를 주고 마오쩌둥의 아내를 위기에서 건져 내고 스탈린에게 밉보여 블라디보스토크로 노역을 갔다가 북한으로 탈출해 김일성과 어린 김정일을 만나기도 한다.
엄청난 사건과 고난이 끝없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낙천적이고 여유로운 태도를 견지하는 알란의 모습은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자유의지를 과연 그 무엇이 억누를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독자들이 별 생각 없이 산 것처럼 보이는 알란의 철학과 모험에 가슴 깊이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각자의 삶과 행복이며 그 무엇의 이름으로도 이 삶과 행복이 억눌리고 감금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세계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한 권의 소설로 훑어볼 수 있는 점일 것이다. 알란의 일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는다.
쉴 새 없이 터지는 웃음 속에서도 어느새 이데올로기란 무엇인지, 종교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의 인생이란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게 되는, 가볍게 읽히지만 여운은 묵직한 작품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 요나스 요나손 / 임호경 역 / 열린책들 / 508쪽 / 1만3800원